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의 세상읽기-여수산단 상생을 기대한다

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여수국가산업단지 대기업들의 배출 조작 사건이 세상에 그 민낯을 드러내면서 국민적 공분을 산 지 만 2년 만에 민·관이 함께하는 환경오염 실태조사와 환경감시센터 설치 등의 합의안이 도출됐다.

사건 발생 초기 당장 해결책을 강구 할 것 같았지만 합의안 도출에만 무려 2년의 세월을 흘러 보낸 것이다. 이 사건은 환경부가 검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모든 언론이 주목했다. 그러나 배출 조작 사건 그 후 1년 또는 2년이 지나면서 어떤 개선책이 나왔는지, 실행에 옮겨졌는지, 그래서 인근 주민들의 건강권은 좀 더 나아졌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데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산단 입주업체와 전남도. 여수시, 주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력거버넌스 위원회가 여수산단 환경관리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권고안을 최종 합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합의 후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이제 반목의 시대를 끝내고 상생을 도모하길 기대한다.

합의된 권고안 주요 내용은 위반사업장에 대한 민·관 합동조사와 여수산단 주변 환경오염실태조사 연구과제, 여수산단 주변 주민건강 역학조사 및 위해성 평가 연구과제 등이다. 거버넌스의 권고안에 따라 소라면 대포리, 율촌면 신풍리 등 여수산단 주변 지역에 유해대기 물질 측정망이 설치된다. 또 10명 이상의 주민이 환경오염물질 배출시설 및 방지시설 현장 공개를 요청하면 관할 행정기관에서는 해당 사업장과 협의 후 대상시설을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전남도는 이번 합의안 도출에 따라 위반 기업 설명회 등을 거쳐 늦어도 다음 달까지 이행 주체인 기업체와 행정기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명식을 갖는다는 계획이다.

남도일보가 2018년 6월부터 본사 기자들로 동부권 취재본부를 가동하면서 관심을 가진 주요 취재 주제는 광양제철소와 여수산단의 환경오염과 안전사고였다. 오늘의 광양과 여수발전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삶이 윤택해지기까지는 광양제철소와 여수산단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맞바꿀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인근 지역의 대기환경 질은 나빠졌고 악취도 끊이지 않아 주민들은 건강 이상을 호소해 왔다.

그런데도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관계기관은 많지만 수년 동안 자행해 온 배출 조작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결국 제보에 의존한 행정이었다. 일부 대기업에 기생하는 토호 세력이 있고 환경단체의 활동은 역부족이다 보니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알권리는 외면당해 왔다.남도일보는 이와 관련된 많은 기사를 기획물로 썼다. 주제별, 사안별 차이는 있지만 길게는 1년여 동안 추적해서 쓴 기사도 있고 반년 넘게 쓴 기사도 있다.

이번 배출 조작 사건이 남도일보가 단독으로 쓴 특종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소명감을 갖고 그동안 관행 또는 묵인하에 저질러진 불법에 대한 추적보도를 이어 갔다. 특히 지난 2월, 법원이 배출 조작 사건에 가담한 대기업들의 불법에 대해 내린 선고 판결문을 입수해 10회가 넘게 연속 보도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판결문만 A4, 5백 페이지 분량이어서 기업체별 불법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산단 대기업들은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1급 발암물질이자 맹독성 물질인 ‘시안화수소’와 ‘염화수소’, ‘벤젠’ 등의 대기오염물질이 법적 기준치를 초과해 배출됐음에도 측정값보다 낮게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배출시설에서 물에 녹으면 염산이 되는 강산성 물질인 ‘염화수소’ 결과값이 기허용 기준을 초과했음에도 실제 측정값보다 낮게 기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 업체는 염화수소 결과값 조작과 측정 수수료를 부풀려 되돌려 받는 등 배출 조작을 둘러싼 비리 백태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최근 3년 사이 최고 연간 83조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여수산단 입주기업들이 배출 조작으로 수년간 대기오염물질 배출 부과금을 면제받아 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 부과금도 ‘푼돈’ 수준에 불과한데도 이를 피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각종 결과 값을 배출허용 기준의 30% 미만으로 조작한 측정기록부를 이용해 허위의 ‘확정 배출량’ 명세서를 작성한 후 전남도의 부과금을 면제 받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법원 판결문을 통해 나타난 롯데케미칼의 부도덕한 형태는 대기업의 윤리나 도덕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남도는 2019년 5월 “롯데케미칼 여수 1공장 소각시설에서 암모니아가 기준치보다 11배 초과 배출했다”며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개선 명령과 함께 초과 배출 부과금 4천66만 원을 납부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은 전남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가 전남도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수년 간 배출 조작으로 부과금을 피하고 녹색기업, 자율 점검업소 지정 등의 갖가지 혜택을 누려왔다는 점에서 같은 사안에 대국민 사과에 함께 고개를 숙인 다른 대기업들과는 너무 다른 형태다.

이제 더 이상의 구태는 안 된다. 여수산단 대기업과 인근 주민들이 상생을 도모하길 거듭 촉구한다. 대기업은 대기업의 위상에 걸맞게 환경과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보여주고 주민들은 또 그런 기업에 박수를 보내길 바란다. 남도일보도 여수산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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