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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진원박씨(珍原朴氏) 장계파 박윤원 종가 <51>

보성 진원박씨(珍原朴氏) 장계파 박윤원 종가 <51>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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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서원 전경

학문에서 충절 꽃 피운 ‘의향’(義鄕)의 명문가
고려 대장군 박진문 시조
왕자사부 박광전 ‘호남5현’
4대가 의병 창의로 절의 계승
의병기념관 문집·유산 보존

전남 보성에는 조선조에 학문으로 세상에 이름을 드높였고 독실한 실천으로 후세의 큰 스승이 된 죽천 박광전의 유적이 절의정신의 발자국처럼 곳곳에 남아있다. ‘시민여상’(視民如傷,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이 백성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긴다)을 함열(전북 익산)현청 동헌에 걸고 공무에 헌신했던 현감 박광전은 광해군을 가르쳤던 왕자사부였다. 깊은 학문을 바탕으로 다듬어진 나라와 지방 통치의 정치철학을 엿볼 수 있는 그의 행적들은 탁월한 문장으로 기록해 후손들이 고이 보존했던 문집에 전한다. 자신과 가문, 지방향촌과 국가를 잇는 실천 학문의 연원을 보성 진원박씨(珍原朴氏) 장계파 박윤원 종가를 찾아 가문 내력과 함께 살펴본다.

◇명필 박희중 아들 박휘생 보성 입향
진원박씨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고려 대장군을 지낸 박진문을 시조로 모신다. 8세 박희중(1364~1446)은 고려 말 구례감무를 지낸 박온의 아들로 문과급제하고 이조정랑·전라도경차관을 거쳐 동궁서연관·예문관지제교를 역임했으며, 해동필원에 이름을 올린 명필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 박휘생(?~?)이 보성에 입향하면서 가문이 부흥한다. 10세인 수의부위 박문기의 아들 박홍원, 박계원, 박윤원 3형제 대에서 장종파, 장중파, 장계파로 분파했다. 11세 박윤원(1458~?)은 사마 생원시에 합격하고 학문연구에 전념하며 진원박씨 장계파를 열었다. 그의 아들 박간은 흥양훈도를 역임했고, 그의 손자인 13세 박이의(1534~1577)가 사마 진사시에 합격했다.

◇조선 성리학 생생 기록 죽천집 남겨
박윤원의 증손자인 14세 박광전(1526~1597, 호는 죽천)은 절의 정신으로 국난 극복의 발판을 마련한 호남의병장이자 성리학을 발전시킨 ‘호남5현’ 중의 한 사람이다. 조광조의 문인이며 고흥(흥양)에 유배왔던 홍섬(1504~1585)에게 공부를 배우고, 유희춘의 문인인 문위세의 누이 남평문씨와 결혼했다. 능주 학포당의 양응정(1519~1581)에게 수학하고 산앙정 등에서 학문에 정진했다. 안동의 도산서당으로 퇴계 이황에게 찾아가 수학하고 ‘주자서절요’를 이별 선물로 받고 돌아와 주자서와 비교하며 연구한 문답록을 자신의 ‘죽천집’(목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06호)에 남겼다.



◇광해군에 민생안정 시무책 제시
그는 사마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기전 참봉을 거쳐 왕자사부(임해군, 광해군의 스승)에 제수됐다. 사헌부감찰, 함열·회덕 현감을 역임하고 낙향해 학문에 매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계영·문위세와 함께 전라좌의병을 창의했다.전라좌의병은 임계영을 대장으로 박광전의 처남 문위세, 아들 박근효(1550~1607), 둘째 박근제, 제자 안방준(1573~1654) 등이 활약해 남원전투에서 승리하고 1차 진주성전투에서 합류, 왜군을 물리쳤으며 경상도 성주, 의령 등에서 공을 세웠다. 그는 전주 분조를 이끄는 광해군에게 민생안정 ·군량확보를 건의하는 시무책을 제시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의병장이 돼 화순 동복 전투에서 승리하고 독실한 절의(節義) 실천의 생을 마감해 용산서원에 배향됐다.

◇4대가 의병 창의한 충의 명문 계승
병자호란에는 박광전의 손자인 16세 박춘수(1590~1641)가 동생 박춘장, 사촌 박춘호, 아들 박진형(1611~1672)과 함께 안방준이 이끄는 의병 창의에 참여했다. 후손 박태승이 동학 접주로 활약하고, 박문용이 만주 봉천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집안에서는 선현의 문집과 유산을 보존하고 절의정신의 가통을 계승하기 위해 용산서원을 중건하고, 의병기념관을 건립해 의향(義鄕) 보성을 빛낸 777명의 영웅들을 후대가 기억하게 했다. 퇴계 이황은 박광전을 떠나 보내며 ‘늦게 좋은 친구를 만났으나 이제 작별하는 이마당에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시5수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박광전이 쓴 ‘우계기’는 도학속에 흘러나와 문질(외관과 본바탕)이 환히 빛나는 글로 후대 학자들이 극찬한다(농암 김창협 등). 이러한 글들은 종가와 문중이 보존한 용산서원, 화산재, 죽천정, 산앙정 등에 판액으로 게시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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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전 문집 죽천집 목판 ‘보성 죽천선생 문집 134판 유묵 12판’(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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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혼琿)이 1584년 스승 박광전에게 보낸 안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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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이 박광전에게 선물한 주자서절요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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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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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전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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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앙정과 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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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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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서원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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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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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천정에 걸린 판액. 퇴계 이황이 박광전에게 준 시의 모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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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천정 현판과 박광전 친필(하단 초서글씨) 판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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