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04) 이천 냥
<제4화>기생 소백주 (104) 이천 냥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김선비는 소백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왕지사 이판사판 나선 김에 팔 걷어 부치고 사내답게 용감하게 나서야 할 일이었다. 한양에 도착한 그날 밤 이정승을 만난 김선비는 죽을상을 하고 울먹이며 소백주가 시켰던 대로 이정승에게 말했다.

“정승나리, 천 냥을 다시 빌려주셔야겠습니다.”
“뭐라! 며칠 전에 빌려준 천 냥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이정승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말했다.

“실은 그 천 냥을 가지고 인천으로 물건을 사려고 가서 주막집에 들어 잠을 자는데 한 밤중이 되어서 수십 명의 도적놈들이 몰려 들어와 목에 칼을 들이밀고 협박을 해서 그 돈 천 냥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어허! 저런, 그런 일이 있었던 말인가!”

“예, 정승나리. 이왕에 장사로 나선 몸인데 천 냥을 도적놈들에게 빼앗기고 보니 기어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갚아야 할 것이라 마음을 다잡아먹고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김선비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래, 으음……이번에는 얼마나 시일이 걸리겠는가?”
“예, 한 두어 달 걸리겠습니다.”

“으음!……사정이 딱하니 어쩔 수 없구만, 내 또 천 냥을 내주겠으니 잘해서 얼른 돈 벌어서 갚으시게.”

이정승이 다시 천 냥을 스르르 내주었다. 소백주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김선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천 냥을 받아 하인에게 짊어지게 하고는 수원에 있는 소백주에게로 돌아갔다. 소백주는 천 냥을 가지고 온 김선비를 보고 말했다.

“서방님, 우리가 되찾아야할 돈이 삼천 냥입니다. 이제 이천 냥을 되찾았으니 한번만 더 용기를 내십시오.”

“으음! 내 그 수전노 같은 탐욕스런 이정승 앞에서 비지땀이 흐르더이다. 그런데 한 번 더 가야하다니, 으음……이번에는 무어라 둘러 붙여야 한가요?”

“그날 일필휘지 시를 휘갈겨 쓰던 서방님의 기백은 다 어디로 가셨나요? 그깟 탐욕에 빠진 소인배 이정승을 대하는데 그리 힘이 들다니요. 서방님답지 않군요. 주안상을 걸게 차려 놓았으니 한잔 드시고 힘내세요. 서방님.”

소백주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허허! 그렇던가? 자! 그럼 우리 함께 회포나 풀어봅시다.”

김선비와 소백주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주안상 앞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꽃 피고 새 우는 향기로운 봄날을 즐기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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