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08) 춘망사(春望詞)
<제4화>기생 소백주 (108) 춘망사(春望詞)
그림/오승은(건국대 디자인학부 졸업)

그림/오승은(건국대 디자인학부 졸업)

소백주가 순간 눈을 찡긋해 보이면서 은근한 미소를 흘기며 끈적끈적 꿀처럼 감겨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 으음! 하 하긴……그러고 보니 오늘 밤이 기중 맑고 좋으니 그도 참 좋을 것 같소만……어째 이 목도 컬컬하고 술 생각이 좀 나기도 하고……”

이정승이 소백주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흐렸다. 이정승은 제 발로 굴러 들어온 떡이 혹여 달아나기라도 할까봐 조바심이 나는 터라서 슬그머니 속내를 열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이구! 정승나리 주저하지 마시고 어서 가셔요. 학덕이 높고 고명하신 정승 나리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당나라의 아리따운 기녀(妓女) 시인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詞)라는 시에 ‘어쩌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那堪花滿枝),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을(煩作兩相思), 거울 속 옥 같은 두 줄기 눈물(玉箸垂朝鏡), 바람아 봄바람아 너는 아느냐(春風知不知)!’ 라는 대목이 있지 않사옵니까! 온 천하에 봄꽃이 피어 지금은 다 져버리려 하고 있는데 오늘밤 저랑 한잔 하시면서 달빛에 꽃 지는 풍경을 함께 보시와요. 정승나리!”

이정승이 속내를 보이자 소백주는 ‘이때다’하고 그 틈을 사납게 비집고 들어가며 내놓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애원하듯 부추기는 것이었다.

“어 어흠! 저 정 그러시다면……내 이 관복을 벗어놓고 나오겠소.”

이정승은 마른침을 꿀꺽 다시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급한 속을 확 열어 보이며 얼른 대답을 하고는 날랜 범같이 방으로 쌩 들어가더니 부리나케 관복을 벗어놓고 하얀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나왔다. 그리고는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며 소백주를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소백주는 길 건너 집을 향해 앞서 걸었다. 앞서 걷는 소백주는 이정승이 보아라고 일부러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걸었다. 그것을 훔쳐보듯 바라보며 군침을 쩍쩍 다시며 어기적어기적 뚱뚱한 곰처럼 따라 걸어가는 이정승은 아무래도 오늘밤 소백주에게 대접 받을 것이 술밥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김선비와 처음 함께 온 날 첫눈에 소백주의 미색을 보고는 그 아름다운 자태에 반해 자신도 모르게 수컷 됨의 급한 야욕이 불처럼 일어나던 것이었는데 뜻밖에 닥쳐온 이런 기회를 이 나라 안에서 내로라는 그쪽의 최고 전문가인 이정승이 결코 마다할리가 없었다.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에 바람도 없는데 웬 향기로운 꽃송이가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것이더냐! 사람은 역시 권력과 돈이 최고니라! 으험! 히히히히!’ 이정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소백주와 김선비를 마음 내키는 대로 잔뜩 비틀어 보는 것이었다. 이정승의 눈에 보이는 소백주는 그야말로 돈이나 권력 가진 사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발가벗고 통째로 덤벼드는 일개 하찮은 그저 얼굴만 어여쁜 천박하고 비루한 마구 함부로 다루어도 좋을 정신없는 천한 계집에 불과했고, 과거에 급제도 못하고 벼슬도 없는 김선비는 세상에 출세하지 못한 능력 없는 불행한 촌뜨기에 쓸개 빠진 비렁뱅이, 얼치기 사내로서 도무지 이름도 자존심도 없는 똥 쑤신 막대기 같은 절대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추저분한 속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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