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나무는 안녕하신가요?
이성자(동화작가)

오늘은 식목일입니다. 식목일이 공휴일이었던 때는 여기저기서 나무심기 행사를 많이 했었지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덟 살 ‘황마훔’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아빠는 한국 사람이고 엄마는 필린핀 사람이었는데, 약간 곱슬머리에 운동을 무척 좋아했어요. 기억하기로는 돼지고기를 절대 안 먹었고, 받아쓰기 시험은 맨날 0점을 받아오던 아이였지요. 그날도 식목일에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할 때였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뜸 “안양 할머니 집에 가면 까미 소나무가 있어요”하는 거예요. 다섯 살 때 삼촌하고 같이 심었는데 어느덧 키가 자신보다 훌쩍 커버렸다고 신바람 나서 자랑했어요. 그러고는 턱밑에 양 손을 받치더니 “제 별명은 까미랍니다”라며 해맑게 웃었어요.

마훔이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한 조가 되었어요. 관리실에서 나눠준 나무를 받아들고 아파트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데, 마훔이가 “선생님 나무는 안녕하셔요?”라고 물었어요.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작년에 심은 나무 잘 있냐고요?”라며 다시 물었어요. 할 말이 없었어요. 그동안 한 번도 찾아가보지 않았으니 안녕하신지, 어쩐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나무를 심는 내내 마훔이가 환경에 대한 질문을 불쑥불쑥 해대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몰라요. 지금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 만날 수 없지만, 식목일마다 마훔이 말이 생각나요. 가끔 작년에 심어두었던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찾아가 살피곤 하지요. 한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자식을 기르는 일과 같다는 것을 어린 황마훔이를 통해 배우게 되었어요.

요즈음 자연의 공격은 코로나19를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무서운 환경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지난 3월 강원도에 내린 어마어마한 폭설로 승용차가 도로에서 긴 시간 움직이지 못했으며, 농가의 엄청난 피해를 뉴스에서 접했어요. 미국은 최저 기온이 섭씨 20도 가까이 떨어지는 이상 한파와 폭설을 동반한 겨울 폭풍으로 정전 단수 교통마비 식료품 문제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었어요.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 희말라야 고산지대에서는 갑자기 홍수가 발생해 댐과 수력발전 시설 한 곳이 완전히 붕괴되어 200여 명이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접했고요. 인간중심주의의 이기심이 최고조에 달하자 자연 역시 최고의 방법으로 인간을 무차별 공격하고 나오는 것 같아요. 정말로 간절히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할 때입니다.

산림학자인 전영우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한 사람이 평생 동안 60년생 소나무로 계산하면 236그루 정도의 나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기 때 종이 기저귀를 쓰는 일부터 평생 휴지를 쓰고, 공책, 교과서, 신문지, 복사지, 결혼할 때 준비하는 가구, 마지막으로 죽어서 묻히는 관 등.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거예요. 얼추 생각해도 맞을 것 같아요. 생태윤리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받은 만큼 자연에게 갚아야지요. 더워지는 지구를 식히기 위해서는 너 나 없이 관심을 갖고 나무 심기를 서둘러야겠어요. 어디 그것뿐이겠어요. 매년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찾아가서 살피기도 해야 하고요.

전문가들이 계산해놓은 자료를 보면 한 사람이 평생 118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야한답니다. 우리가 평생 쓴 것에 비하면 적어요. 그래서일까요. 어떤 학자는 600그루 쯤 심어야한다고도 해요.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많이 심으면 더 좋겠지요. 문득 “문명 앞에는 숲이 있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라는 프랑스 작가 ‘샤토부리앙’의 말이 생각나네요. 사막이 아닌 푸르른 나무가 우거져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할 소중한 자원입니다. 오늘은 작년에 심어두었던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보러가야겠어요. 지금쯤 늠름한 청년으로 자랐을 까미, 황마훔이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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