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칼이 지나간 흔적들…역사의 깊이가 묻어나다
송필용 작가, 김냇과 초대전
‘거친 땅, 곧은 물줄기’ 주제
8일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
5년여 매진 최근작 66점 전시
분청사기 조화기법 표현 주목

송필용 화가는 8일부터 5월 31일까지 광주 김냇과 전시실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김냇과 전시장에 걸린 송필용 화가의 작품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
송필용 작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얼기설기 긁어내고 박박 그어진 자국들이 가득하다. 화면 위를 수없이 휘저은 손길이 지나온 한 움큼의 시간은 오롯하게 흔적을 새겼다. 한층 한층 덧칠해진 물감은 우리네 삶의 상흔이자 역사의 층위다. 그 흔적들은 칼과 붓, 손으로 자유롭게 휘갈겨진 틈새로 묻어나온다. 때로는 빨갛고, 때로는 검다. 흰색, 노란색, 파랑색의 원색은 물론 주황, 회색의 융합색도 보인다. 이 색상은 농담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비쳐진다.

거칠고 거칠고 두텁게 내려앉은 색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운이 시원하게 쏟아져 내린다. 긴 시간 켜켜이 쌓이고 쌓인 거친 땅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물줄기. 그 곧은 물줄기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의 궤와 나아갈 시대의 힘을 담아냈다. 굴곡진 시간을 딛고 도도히 흘러온 우리의 역사이자 앞으로 나아갈 시대의 힘이다. 그리고 화면 아래 자리한 바위는세월의 흐름속에 단단하게 응축된 삶과 역사의 흔적들이자, 내일로 향하는에너지다.

이처럼 역사의 무게를 깊이 있는 사색의 시선으로 담아내 온 송필용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문화공원 김냇과의 초대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19년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 초대전 이후 2년 만의 전시이다. 전시는 ‘거친 땅, 곧은 물줄기’ 제목으로 최근 5년여 동안 매진한 근작과 함께 1990년대 그린 구룡폭포 등 금강산, 해남 달마산 66여 점이 김냇과 전시장 3개층을 곳곳을 꽉 채웠다.

송필용에게 이번 전시는 더욱 특별하다. 코로나로 인해 도리어 작업에 더 많이 매진할 수 있었던 최근의 시간이었다. 과거 송필용의 작품들은 대다수 명확한 대상들이 있었다. 산과 바다, 땅, 바윗덩이 등 역사라는 큰 궤적을 살펴가는 작가의 마음을 대신하는 상징물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대다수 작품들엔 상징적 대상이 사라지고 관조적 풍경이 자리했다.

송필용 작 ‘심연의 폭포’

작가만의 새로운 예술세계가 다시 시작됨을 암시하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두터운 화면 위 섬세한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지만 큰 시야로 본 작품들은 거대한 색면이 주를 이룬다. 화업 40여 년의 시간이 침잠된 작품들이다. 대상은 사라졌지만 그간 ‘역사’라는 큰 무게를 고찰해오던 시간은 그대로 화면 위로 옮겨졌다. 하나 하나의 풍경들은 응축된 심상의 풍경으로 거친 땅과 곧은 물줄기가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더 주목할 것은 화면의 질감표현이다. 분청사기 조화기법으로 그간 작가가 자신만의 독자적 표현을 탐구해 온 결과이다. 전시 출품작인 ‘심연의 폭포’, ‘땅의 역사’, ‘역사의 흐름’,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로 명명된 작품들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땅’과 ‘물’이다.

이 작품들 모두엔 붓끝과 칼끝이 지나간 흔적이 여실하다. 얽히고설킨 역사 속 혼돈의 세상을 정화시키고 치유의 힘과 에너지를 응축하듯 작가는 화면 위에 새겨나갔다. 그렸다기보다 새겨나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한 것은 그 근원을 ‘조화기법’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더욱 두터워지고 거칠어진 근작들엔 ‘조화선’이 가득하다. 칠하고 긋기를 수백 번 반복하는 것, 쌓고 덜어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무려 7년동안 작업이 진행된 작품이 있을 정도다.

송필용 작 ‘땅의 역사’

서양화 안료로 그려가지만 작가가 바라본 것은 우리 역사요 우리 땅이었기에 표현기법에서 옛 정신의 깃듦을 내내 고민하며 그 해답을 ‘분청사기 조화기법’에서 찾았다. ‘회화’라는 예술의 근원적 표현과 더불어 정신을 대변할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꾸준히 탐구한 결과이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은 “차곡차곡 그림 안에 시간의 층위를 올려가며 붓끝과 칼끝은 함께 화면을 구축한다. ‘조화기법’이 ‘회화’라는 표현과 정신이 함께 깃듦을 가능케 한 것이다. 거친 질감만이 남았지만 송필용이 그려온 땅과 물의 기는 더욱 응축되었고,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지각으로 확인되는 풍광은 희미해졌지만, 내면의 풍광은 더욱 명확해진 것이다”며 “시대의 가르침을 껴안으며 그 심오한 울림을 더 깊이 매만질 수 있는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한층 더 깊어진 작가의 시선을 이야기했다.

송필용 화가.

송필용은 전남대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주시립미술관, 학고재 갤러리, 이화익 갤러리 등에서 23회의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일민 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UN한국대표부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6년 제2회 광주미술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청와대, 겸재정선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8일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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