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광주비엔날레 둘러보기-(9)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깊은 기억, 다종의 시대’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둘러보기
역사의 현장서 만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치유
(9)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깊은 기억, 다종의 시대
양림동 옛 풍장터, 치유의 장으로
제주 4·3 추모…후각으로 기록
종교적 상징성으로 시민성 엿봐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내부 전경

이번에 소개할 곳은 광주비엔날레 주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다. 이곳은 광주 남구 양림산 일대로 과거 풍장터였던 선교사 묘지 끝자락에 자리해 있다. ‘풍장터’란 과거 병들어 죽은 이들이 장례를 치르지 못해 시신을 내다 버리는 곳을 이르는 터를 말하는데, 당시 양림동은 병들고 가난한 이들이 터를 잡은 광주 속에서도 가장 낮은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양림산 일대는 항일의병 투쟁을 비롯해 과거 한반도 기독교 포교와 미국의 지정학적, 군사적 영향력의 거점으로 역사의 복합적인 층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흔적들은 잘 보존돼 있는 한국의 전통 건축물과 일제강점기 방공호로 사용됐던 동굴, 선교사 묘지 등 양림산 주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 역사상 처음 전시공간으로 활용되는 이곳에서는 코라크리트 아루나논드차이(Korakrit Arunanondchai)와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 파트리샤 도밍게스(Patricia Dominguez), 사헤지 라할(Sahej Rahal), 김상돈의 근작을 만나볼 수 있다.
 

사헤지 라할 作 ‘잃어버린 페이지’

먼저 아트폴리곤에 들어서면 인도 출신 사헤지 라할 작가의 ‘잃어버린 페이지’를 만나볼 수 있다. 이는 인도 신화와 카스트 제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라할의 드로잉 작품들은 자연사·민속 문화·형이상학의 공통점이 만나 연작으로 탄생하게 됐다. 현재 진행형 회화 컬렉션은 상상의 동물과 캐릭터들을 이슬람 고전 삽화본 문학 장르의 형식을 빌려 백과사전식으로 재현했다. 작가는 여러 세대를 거쳐 왜곡된 전설들과 디스토피아 미래에서 건너 온 괴수 등 우주론적 이야기 속 캐릭터들을 배치해 오늘날 인도의 카스트, 가부장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급증하는 종교적 상징을 전유함으로써 시민성에 대해 들여다본다.

김상돈 작‘불수레’

라할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김상돈 작가의 ‘불수레’는 혼성적인 탈것과 안테나가 그의 실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들은 생기를 띤 장치로서, 그 전파는 지구, 하늘, 신적 능력 사이를 가로질러 작동한다.

이어지는 작품은 코라크리트 아루나논드차이의 ‘죽음을 위한 노래’이다. 이는 푸른빛 스크린을 통해 제주 4·3사건을 추모하며 공동체의 문화적, 영적 치유를 모색하기 위한 영상설치작품이다. 한국을 방문한 작가는 인류학자 김성례와 만나 역사적 집단 추모의식을 지켜보며 그 경험을 고스란히 이번 작품에 녹여냈다.

아루나논드차이 작가의 영상 속에서 김성례가 ‘애도 작업’이라고 표현하는 추모활동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제주 해양 생태계의 구전 풍습과 영적유산, 그리고 태국 민주화운동의 의식을 수행적 관습과 교차해서 보여준다.
 

코라크리트 아루나논드차이 作 ‘죽음을 위한 노래’

아루나논드차이의 작품 대부분은 유령이 역사적 구성과 사실적 현실 모두와 섬세하게 얽힌 ‘인식의 암흑’을 탐구하고 이야기한다. 그의 영상의 난해한 스토리 라인은 베트남 전쟁의 신화나 불교 유령 영화의 역사, 태국 북부의 CIA 비밀 감옥에 대한 루머 등을 통해 문화와 영적 혼종성의 영역을 넘나들며 ‘나가’로 알려진 뱀과 같은 생물체와 육실을 떠난 영혼을 불러낸다.

아트폴리곤에서 나와 글라스폴리곤으로 들어서면 흰 동그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현무암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저마다 작은 일련의 번호표를 메고 있는 현무암에는 각각의 향이 베어있다. 이 작품은 시셀 톨라스의 ‘EQ_IQ_EQ’이다.

냄새 연구가이자 작가이며, 화학자인 시셀 톨라스의 작업은 개인과 공동체의 감정 지성을 탐색하고 분자 수준에서 지구와 조응하기 위해 후각에 집중해 여러 분야를 연결시킨다. 작가는 광주비엔날레를 위한 리서치 방문 기간 중 언어학자 백승주와 한국인의 감정 지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수십 년간의 탄압으로 점철된 제주의 폭력의 역사와 영적 유산을 연구했다. 70년간 매일 수기와 삽화로 자신의 삶을 기록해온 제주도민 양신하를 소개받은 작가는 언어와 기억, 감정 촉발 간의 이례적인 교환을 발견했다. 영화감독 좌성환의 도움으로, 돌에 나노분자를 심었다. 신작 ‘_EQ_IQ_EQ_’ 설치작품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집단 지혜나 슬픔의 비언어적 양식인 ‘눈치’와 ‘한’과 같은 개념을 토대로 역사, 비극, 신념에 대한 대안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기면 파트리샤 도밍게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시셀 톨라스 作 ‘EQ_IQ_EQ’

설치작품 ‘어머니의 드론’은 2019년 여름, 볼리비아 치키타니아 지역과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화재로 불길에 다친 동물을 돌보기 위해 급조된 동물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작가가 한쪽눈을 실명한 투칸(왕부리새 류)을 돌보면서 느낀 현대의 삶과 생명의 관계를 담아낸 설치 작품이다. 이를 통해 터전을 잃어가는 남아메리카 토착 원주민의 삶을 애도하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칠레 산티아고의 시위대를 드론으로 감시하는 경찰의 행태를 고발한다.

또 다른 작품인 ‘그린 아이리스’는 홍채의 ‘식물색’으로 유럽의 혈통을 암시한다. 원주민 세계를 애도하는 눈물이 그려진 오리 모양의 도자기인 자로 파토를 묘사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메스티소(라틴 아메리카의 에스파냐계 백인과 인디오와의 혼혈 인종)의 치유 활동을 암시하는 장미의 존재, 동시대 현실의 이모티콘과 패스트패션 사각 팬티와 정장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작가의 작품들은 원주민과 식민자의 신화들, 그리고 그들의 동시대적 복합성을 작업 속에 혼합하며 오늘날 인간의 ‘채굴주의 사원’에 대한 기록을 제공한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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