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이성자(동화작가)

오래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아이를 만났는데, 날름 내 옷에 코를 대고 큼큼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당황해서 ‘혹시,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나니?’ 하고 물었더니, 얼굴이 빨개져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모라는 분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백일 무렵부터 시골 외할머니 품에서 자랐는데, 갑자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겨졌단다. 그동안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여러 사람 품에서 자랐던 아이는 언제부턴가 습관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으며, 세 살 생일 때 엄마가 잠깐 들러서 입혀주고 떠난 스웨터를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밤마다 코밑에 품고 자더라는 것이다.

태어나서 겨우 3개월 정도 엄마와 함께 살았던 따뜻한 가정과 그리운 냄새를 찾기 위해 손길만 스쳐도 큼큼거렸던 아이. 그 습관은 자라면서 눈을 감고도 냄새 하나만으로 사람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고, 씻어놓은 숟가락 냄새만으로도 누구의 것인지 구별해 낼 수 있는 냄새박사가 되었단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제주도에 산다는 엄마를 찾아 홀로 비행기를 타고 떠난 뒤로는 한 번도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 이모에게서, 지금은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라는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니 ‘즐거운 나의 집’을 작사한 ‘존 하워드 페인’이 그리워진다. 노래 가사와는 달리 그는 단 한 번도 가정을 가져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진정 이상한 얘기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바른 말이지 아직껏 내 집이라는 맛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할 것이오’ 라는 안타까운 내용을 전했다고 한다. 너무도 가난했던 그는 1년 뒤인 1852년 4월 10일 유럽 각지를 방랑하다가 알제리에서 길가에 쓰러지듯 이 세상을 떠났다. 31년이 훌쩍 지난 뒤 그의 유해가 본국으로 운구 되던 날, 부두에는 뉴욕 시가 생긴 이래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비롯하여 최대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권력자도, 돈 많은 재벌도, 위대한 과학자도 아니었던 그를 오래도록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따뜻한 가정을 그리워하는 노래 때문이었으리라.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사랑의 마음으로 내 가정은 물론 가까운 주변까지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너무너무 힘든 가정은 없는지, 부모를 떠나 외롭게 지내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샅샅이 살펴야 하리라. 더 나아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다가 우리 곁을 떠난 5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할 일이다. 자식이나 부모, 형제를 잃고 눈물로 살아가는 5·18희생자가족을 위한 위로와 격려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관계기관에서는 두루두루 확인하고 살펴야 한다. 어린나이에 냄새박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의 슬픈 시절이나, 전 세계인들에게 노래를 통해 삶의 근본이 되는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위대한 ‘존 하워드 페인’ 같은 안타까운 삶이 주변에서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이제는 온 세계가 하나 된 마음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안전을 위해 만남을 자제해야하는 요즈음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거리마다 이팝나무가 하얀 쌀밥 같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있다. 이팝나무 꽃이 진짜 하얀 쌀밥이라면 좋겠다. 커다란 그릇에 듬뿍듬뿍 담아서 돌봐야할 이웃에, 피부색과 국경은 달라도 세계의 가난한 이들에게 고루고루 나눠줄 수 있을 테니까. 힘든 상황이지만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결혼할 사람들이 모두모두 꽃피고 새 우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즐거운 나의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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