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현 피아니스트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서양 음악 역사의 판도를 바꾸다
이인현(피아니스트 겸 작가)

누군가 나에게 세계사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사건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제1차 산업혁명을 언급한다. 농업과 가내수공업이 주를 이루는 농촌 경제에서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의 도시 경제로 사회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바뀌었다. 이 변화로 자본주의가 확립되면서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이 늘어났고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큰 손이 되었다. 자연스레 궁정과 왕족의 힘은 잃어갔고 경제적인 능력과 여유가 생긴 시민들은 시민혁명이라는 이름아래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실질적인 주체자로서 인정받고자 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혁명들은 프랑스, 미국 등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이는 세계 전체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 제1차 산업혁명이 과연 정치와 경제에만 변화를 주었을까?

아니다. 이는 서양음악 역사 전체를 뒤엎는 큰 사건이었다. 음악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딴따라 불리며 그들의 능력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왕정과 궁정에 속해 그들의 여흥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용되는 집단이었으며 주로 저녁 만찬이나 파티에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게 주요 임무였다. 또한 교회에 속해 음악을 연주하거나 작곡하는 일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원하는 음악을 만들 권한은 없었다. 물론 그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하고싶은 음악이 있었겠지만 생계를 위해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제1차 산업혁명이 터지면서 정치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진 왕과 귀족들은 불필요하다 생각하는 노동자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음악가들 역시 우선 대상자였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며 예체능 과목을 등한시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음악가들 역시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월급을 주지 않는 그들을 위해 더이상 봉사할 이유는 없었다. 왕과 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음악가들은 프리랜서로서 스스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교회나 궁정 등 소수만이 가능했던 음악활동은 경제적인 여유와 교양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음악이 손쉽게 향유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든 소위 좀 있는 집이라면 피아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집에 두는 것 만으로도 경제적 여유를 가진 가정으로 여겨졌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다루는 일은 음악과 가까워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고, 집안 일을 하는 부인들의 교양을 쌓는 취미 활동으로 제격이었다. 음악가들 역시 피아노의 등장으로 선생님을 찾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레슨은 그들의 가장 큰 경제활동 수단이었다. 사람이라면 실력이 점점 늘수록 뽐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본성이 있지 않은가.

부인과 아이들은 주말 저녁 가족들 앞에서 그들의 음악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주변 지인들과의 자리를 마련하여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점점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음악회 역시 양적으로 질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폭발적인 음악 인구의 증가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연주회장 건설을 촉진시켰고 이는 공공 음악회가 가능토록 만들었다. 티켓을 사서 연주회를 찾는 문화가 정착될수록 관객들의 만족을 위해 음악가들은 다양한 음악을 작곡했으며, 이는 열광적인 청중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과거의 음악은 만찬과 파티를 위해 만들어져 단순하고 흥얼거리기 좋은 스타일이었다면, 산업혁명 후에 인기 있는 음악은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화려하면서도 인간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이 담긴 음악이었다.

제1차 산업혁명은 정치, 경제, 사회 뿐 아니라 문화, 예술에도 큰 변화를 이루었으며 특히 서양음악 같은 경우, 역사가 다시 쓰였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 소수만을 위해 존재했던 음악은 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 되었고, 사람의 마을을 울리고 눈물짓게 하는 힐링의 도구로서 큰 힘을 발휘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상관없는 산업혁명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듯 음악 역시 산업혁명의 큰 수혜자였다.

제1차 산업혁명 전과 후의 음악 변화에 대해 음악으로서 느끼길 원한다면 하이든 음악을 들어보길 권한다. 그는 원래 궁정의 악장으로서 생활하다 세상이 바뀌면서 프리랜서로 전향한 음악가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초창기 음악은 앞에 언급한 것처럼 단순하고 이론적이면 굉장히 구조적이다. 하지만 그의 후반기 음악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게 화려하고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그의 초창기 작품은 ‘고별’ 교향곡으로 단순하고 음악 이론에 맞게 쓰여졌으며, 그를 평범한 음악가가 아닌 대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놀람’ 교향곡은 관객의 상상력과 마음을 사로잡고 다양한 구성과 화려함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 평가 받고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