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5월

이민철((사)광주마당 이사장)

1980년 5월,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산수동 오거리 한복판에 살아서 많은 현장을 마주했다. 불이 난 탱크, 버스와 트럭의 시민군들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저녁엔 할머니 집으로 피난을 갔다가 아침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밥을 해주시면 옥상에 있는 시민군 아저씨들에게 가져다드렸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던 나이였다.

5월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은 1987년이다. 6월 항쟁의 길 위에서 다시 5월을 만났다. 사진과 영상은 참혹했고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보고 신문과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활동하던 문학회와 동아리도 점점 사회참여적인 색깔이 짙어졌다. 학교와 교육의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불온한 책방을 드나들었다. 5월이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왔다.

몇해 전, 고딩 시절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5월 광주에 대해 사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르다. 나는 분수대 주변 광장에 가득 모인 집회, 주먹밥을 만들던 거리의 솥단지들, 병원의 헌혈사진이 떠오른다고 했다. 예술을 하는 친구가 한마디 했는데 모두들 공감했다. 참혹함을 다룬 작품이 많았는데 시민들이 그 안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충분히 조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가 폭력의 한복판에서 저항과 연대, 시민정치와 나눔의 공동체 같은 다른 세상의 씨앗들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 씨앗을 오늘의 나무로 키워갈 것인가?

2017년부터 광주시민총회가 5월 21일, 시민의 날에 열리고 있다. 시민군이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과 광주를 되찾은 날이다. 시민들이 투표로 광주 시민의날을 이 날로 정한 것도 뜻이 깊다. 시민들이 옛 도청 앞 분수대에 둘러앉아 광주와 세상을 논하던 민족민주화대성회가 오늘에 펼쳐지고, 한국과 세계의 시민들이 5월 광주의 민주주의를 함께 즐기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5월의 엄마들이 세월호의 엄마들을 꼬옥 껴안고 함께 울었다. 금남로에 있던 모두가 울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80년대 엄혹하던 시절 전국의 많은 현장들이 금남로와 망월묘역을 찾았다. 결기를 다지고 힘을 모으는 회복의 도시였다. 돌아가신 서유진 선생님은 독재에 신음하는 아시아 사람들에게 광주가 어떤 의미인지 자주 이야기하셨다. 지금은 홍콩과 미얀마가 광주다. 시민들이 솥단지를 걸고 주먹밥을 만들던 기억으로 돈을 모으고 마음을 담아 미얀마와 연대하고 있다.

올해부터 윤상원기념사업회, 광주마당, 5·18NOW, 세 단체는 5월 정신을 실천하는 청년활동가를 선정해 ‘메이펠로우’ 지원을 시작했다. 배우이자 연출가, 문화예술 활동가인 장도국씨가 1기 메이펠로우로 선정되었다. 들불기념사업회는 올해 16번째 들불상 수상자로 기후운동가인 이유진씨를 선정했다. 강물이 넓고 깊게 흐르면서 바다로 향하는 것처럼 광주의 5월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부터 2030년 5월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늘어났다. 50번째 5월이다. 광주마당에서는 10년을 상상하고, 10년을 기획하고, 10년을 행동하자고 제안했다. 5월 반세기를 갈무리한다는 마음도 있지만, 더 큰 마음은 새로운 5월의 시작이다. 5월 백년을 향한 출발점에 젊은 5월들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선배들의 거룩함은 아름답게 남기고, 새로운 시대는 다른 감각과 상상으로 더 넓게 깊게 흐르면 좋겠다.

10대, 20대, 30대들에게 앞으로 10년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행히 젊은 5월, 젊은 광주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에서는 청년들의 오월을 만들고 있다. 이야기판을 깔고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광주마당에서도 메이펠로우와 오월밥집을 시작했다. 이 곳 저 곳 청년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올해 5월의 구호도 시대와 눈을 맞추고 세대와 발을 맞추자였다. 2021년의 청년들은 세계적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30년은 인류 문명에 있어서도 상징적인 해가 될 것이다. 인류가 위기를 넘어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5월은 든든한 주먹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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