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공동기획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이야기
<21> 섬마을에 얽힌 이팝나무와 풍어제
섬 이팝나무 ‘기아·가난·빈곤’ 극복 상징물
조상들의 배고픔 설움 달래는 수단에서 식재
일회적·일방적 이벤트 아닌 문화로 재탄생
풍어제도 같은 맥락 … 조상 음덕으로 해석

섬사람들은 건강이 좋지 않으면 뱃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선주들이 스스로 나서 뱃사람들의 무병 건강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다. 사진은 풍어제 한 모습. /위직량 기자 jrwie@hanmail.net

해마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순에 이르는 시기가 되면 한반도 서남권에 속한 섬마을에는 이팝나무가 이른바 화양연화(花樣年華) 시절을 맞이할 정도로 많이 핀다. 섬마을은 만개한 이팝나무 꽃으로 뒤덮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은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므로 ‘입하목(立夏木)’으로 부른 것이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유래가 있는가 하면, 꽃이 피면 나무가 하얀 꽃으로 덮여 나무의 하얀 꽃송이 모양이 이밥(쌀밥)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또는 꽃이 활짝 피면 그해 벼농사가 풍년을 이루어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팝나무는 고깃국과 함께 쌀밥을 먹어봤으면 하던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팝나무의 이미지는 김선태 시인의 ‘살구꽃이 돌아왔다’라는 시집에 실린 ‘그 섬의 이팝나무’란 시에 잘 드러나 있다.

“쌀 한 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엔 늙은 이팝나무가 한 그루 있지요. 오백여 년 전 쌀밥에 한이 맺힌 이 마을 조상들이 심었다는 나무입니다. 평생 입으로는 먹기 힘드니 눈으로라도 양껏 대신하라는 조상들의 서러운 유산인 셈이지요. 대대로 얼마나 많은 후손들이 이 나무 밑에서 침을 꼴딱거리며 주린 배를 달랬겠습니까. 해마다 오월 중순이면 이 마을 한복판엔 어김없이 거대한 쌀밥 한 그릇이 고봉으로 차려집니다. 멀리서 보면 흰 뭉게구름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수천 그릇의 쌀밥이 주렁주렁 열려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냄새가 사방팔방 퍼질 때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풍어제를 지냅니다. 이쯤이면 온갖 새들은 물론이고 동네 개나 닭들 하다못해 개미 같은 미물마저도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으러 모여드니 이 얼마나 풍요로운 자연의 한 마당 큰 잔치입니까. 대낮이면 흰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식혀주고 밤이면 환하게 불을 밝혀 뱃사람들의 등대 구실까지도 한다니 이만하면 조상들의 음덕치고는 참 미덥고 보배로운 것이 아닐는지요.”

‘그 섬의 이팝나무’라는 시의 전문이다. 해마다 5 ~ 6월에 이팝나무의 절경을 보려면 서남해 섬마을을 찾아가야 한다. 이 무렵 서남해 섬마을은 섬의 절경과 이팝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풍광이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팝나무 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5 ~ 6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이 ‘보리고개’를 경험한 시기였다. 1960 ~ 70년대에 보리고개는 많은 한국인들이 대부분 경험했던 가난과 빈곤의 상징이었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보리고개를 넘기기가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시절에 생겨난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남해 섬마을에는 흉년이 들어 어머니의 품에서 빈 젖을 빨다가 굶어 죽은 아기를 묻고, 그 앞에 이팝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쌀밥에 한이 맺힌 조상님들이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배불리 먹어보라는 간절한 마음과 애잔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아이에게 입으로는 먹이지 못했던 쌀밥을 눈으로라도 배불리 먹여보고자 하는 마음과 심정 속에는 가난하고 빈곤한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당시 이팝나무는 가난과 빈곤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이팝나무의 전설은 배고픔과 가난을 상징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이겨내고자 하는 섬사람들의 삶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는 ‘빈곤의 문화’ 또는 ‘가난의 문화’(culture of poverty)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개념은 1959년에 그의 멕시코 빈민가족연구를 통해 최초로 알려졌다. 그는 멕시코 가족에 관한 빈곤과 빈민의 이야기인 ‘산체스네 아이들: 빈곤의 문화와 어느 멕시코 가족에 관한 인류학적 르포르타주’(박현수 옮김, 이매진, 2013)이라는 책에서 멕시코 빈민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빈민들의 인생 속에 존재하는 빈곤의 사회적 조건, 구조의 문제, 빈민들의 욕망, 기대, 좌절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그는 이 책에서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뒤처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단순한 경제적 결핍 이상의 독자적인 구조와 적극적인 방위기제를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가난하고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과 부유하고 풍요로운 사람들의 규범 간의 차이를 찾아낸 것이다.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특정의 가치, 신념, 태도 등과 같은 ‘빈곤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빈곤이나 가난은 이러한 ‘빈곤의 문화’로 인해 생겨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빈곤의 문화’와 관련된 빈곤의 사회 구조와 빈민들의 욕망과 기대는 제의와 의례를 통해 상징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예컨대 가난한 어민들의 ‘빈곤의 문화’는 풍어제와 같은 제의나 의례를 통해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해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풍어제는 어민들이 섬마을의 안녕과 풍어,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의로 일종의 축제이기도 하다. 특히 한반도 서남해 어촌의 어민들은 풍어를 비는 풍어제를 지낸다. 어촌에서는 풍어를 비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실천이기도 하다. 농촌과 달리 섬과 바다는 위험성이 강하기 때문에 풍어제에 대한 종교적, 신앙적 관심이 매우 높은 편이다.

전남 서남권 해안가의 많은 어촌에서는 아직도 바다의 신을 모시는 신앙이나 종교적 관행들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무속신앙을 비롯한 여타의 민간신앙이 강한 것이 또 다른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해안 마을에는 마을 어귀에 바다와 관련된 신화를 가진 동신(洞神)을 모신 신당이 있는 곳도 많다. 이런 섬마을에서는 특히 배를 가진 사람들이 바다에 대한 신앙이 강한 편이다. 배를 만들어 처음 진수할 때는 반드시 뱃고사를 지내며 배 안에 성주신을 만들어 모시고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제의나 의례를 행하여 배의 무사안전을 빈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건강이 좋지 않으면 뱃일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선주들이 스스로 나서 뱃사람들의 무병 건강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내기도 한다. 용왕굿을 할 때는 선주들이 굿판에 등장하여 뱃노래를 부르며, 무당은 선주를 위하여 잡귀를 쫓고 복을 받는 의례를 수행하기도 한다. 바다에서 죽은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용왕굿 중에 바다의 용왕신이나 해신에게 밥을 주는 헌식(獻食) 의례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보릿고개 시절, 이팝나무는 쌀밥에 한이 맺힌 선조들이 눈으로라도 배불리 먹어보자는 심정으로 심었던 해원과 위로의 ‘힐링’ 나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 이팝나무를 심고 눈으로라도 쌀밥을 배불리 먹기를 소원했다. 큰 나무로 자라면 봄에는 아름다운 꽃을 보며 풍흉을 점쳤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마을의 이정표 나무로 섬사람들의 안녕과 복락을 함께 하면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 이팝나무는 대낮이면 하얀 그늘을 드리워 섬사람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밤이면 환하게 불을 밝혀 뱃사람들의 등대 역할을 했다. 미덥고 보배로운 조상들의 음덕이었던 셈이다.

해마다 5 ~ 6월에 서남해 섬마을에서 이팝나무를 심는 일은 단순히 일회적이고 일방적인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의 의례가 되었고, 이를 넘어선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초창기에 섬에 이팝나무를 심는 일은 입으로는 먹지 못한 쌀밥을 눈으로라도 실컷 배부르게 먹었으면 하는 조상들의 간절한 소망과 애절한 마음이 담긴 가난과 배고픔을 잊고자 하는 음덕의 결과였지만, 이제는 기아와 가난,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시작은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것일지 몰라도, 이제는 조상들의 음덕을 실천에 옮기는 하나의 생활양식, 즉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제 섬마을에 이팝나무를 심는 일은 그저 세속적으로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섬마을의 품격을 높이고, 섬사람들의 삶의 질과 복지 수준을 높이는 일이며, 가난했던 시절의 ‘빈곤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문화 만들기’로, 섬 지도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 말하기 힘든 사정이 있는 섬사람들을, 단순히 타자화된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의 이웃사람으로 대하도록 도와야 할 책무가 있는 섬 지도자들은, 풍어제와 같은 제의나 의례가 지닌 문화적, 민속적 의미를 현재의 맥락 속에서 살려내어 섬사람들의 ‘빈곤의 문화’를 극복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글/홍석준(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정리/박지훈 기자 jhp9900@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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