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8)늙은 거지
<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8)늙은 거지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세상에! 이런 저주받을 일도 다 있단 말인가!”

공양주보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덕지덕지 기운 헌 누더기를 걸친 쭈글쭈글 주름이 온 얼굴에 새집을 짓고 앞니가 다 빠진 허연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오는 흡사 진흙 구렁에 사는 짐승과 진배없는 거지 할머니였다. 화엄사 앞 개울 돌다리 밑에 움막을 치고 살면서 가끔 화엄사 공양간에 와서 나물도 캐 주고, 불도 때주고, 잔심부름을 거들어주면서 한 끼 공양을 얻어먹고 가거나 누룽지나 과일을 얻어 가던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공양주보살보다도 더 참담하게 살아가는 늙은 거지 할머니였다.

“돈 많고, 권력 많은 대 시주자를 만나겠거니 했는데……에잇! 재수 없이 저런 거지 할머니라니!”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 눈앞이 캄캄해 오고 머리가 어지러워진 공양주보살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만 그 자리에 짚단처럼 맥없이 풀썩 쓰러질 뻔했다.

“어머나! 우리 공양주보살님이 아침 일찍 어딜 가시나?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시네!”

거지 할머니가 누더기를 걸친 몸으로 맥이 풀린 듯 백지장처럼 얼굴이 허연 공양주보살을 얼른 부축하며 말했다.

“에구머니나! 할머니, 하필이면 오늘 아침 무슨 일로 이리 일찍 절에 오시나요?”

공양주보살은 속마음을 표현할 길 없어 그만 그렇게 불쑥 볼멘소리로 말했다.

“에구! 먹을 게 없어 어제부터 탈탈 굶다가 몸도 아프고 배가 고파 죽겠길래 공양주보살님에게 뭐 좀 얻어먹을까 하고 가는 참인디, 가는 날이 장날이고 공양주보살님이 오늘 어디 다니러 가시나 보네!”

거지 할머니가 휑하니 꺼진 눈망울로 허기가 진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공양 간에 서너 날 건너 한 번씩 오곤 해서 찬밥에 남은 나물이라도 얻어먹고 가곤 했는데 요사이 며칠 동안은 나타나지 않아 어디가 아픈가 보다 하고 잊고 있던 터였는데 하필 오늘 아침 이 길에서 맨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마주치게 될 줄이야 꿈에나 알았을까!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망연자실 쿵! 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한동안 길 가운데 털썩 주저앉아있는 공양주보살의 머릿속에 문득 어젯밤 꿈이 선연히 떠올랐다. 머리가 허연 노인이 ‘내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맨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장육전 시주를 부탁하면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 꿈을 철석같이 믿고 이렇게 길을 나섰는데 맨 처음 만난 사람이 하필이면 세상에서 제일 복 없고 천하고 가난한 저 거지 할머니라니!’ 정말 가슴을 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공양주보살은 너무도 기가 막혀 자신도 모르게 ‘나무관세음보살’을 외며 땅이 꺼지도록 다시 절망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런데 순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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