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9)대 시주자

<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9)대 시주자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비록 맨 처음 만난 사람이 저 거지 할머니라지만 저 거지 할머니라고 하여 장육전 중건불사를 할 대 시주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공양주보살의 뇌리를 스치고 갔던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 만물을 자비의 눈으로 공평히 보고 또 세상 만물을 누구나 분별없이 똑같이 사랑한다지 않던가! 그리하여 생명 있는 모든 세상 만물은 서로 평등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공양주보살의 머릿속에 계파선사를 비롯해 오랫동안 수행을 해온 공부를 많이 한 늙은 스님들이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공양주보살은 자신이 거지 할머니를 맨 처음 만난 것은 억세게 재수가 사나운 일이다고 여기며, 한 생명을 장육전 중건 불사 재물과만 관련 지어 보고 마구잡이로 천시하고, 무시하고, 책망하고 있는 것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대자연의 섭리 따라 똑같이 귀중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에 대해 그 소중함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외향의 것에만 의존하여 저 거지 할머니는 장육전 불사의 대 시주자가 절대로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미리 속단해 버리고 무시하고 천시해 버린다면 이 또한 매우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공양주보살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거지 할머니 앞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면서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대 시주자님이시여! 우리 화엄사 장육전을 크고 훌륭하게 지어주소서!”

“뭐? 뭐라!……”

그 말을 들은 거지 할머니는 공양주보살이 자신을 보고 해괴망측한 장난질을 하는가 싶어 자신도 모르게 ‘헤!’ 하고 입을 벌리고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원! 공양주보살님! 무슨 농담을 그렇게 잘도 하시나! 나같이 한 끼 끼니도 때울 수 없는 땡전 한 푼 없는, 오늘 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 든 노망난 다리 밑에 사는 거지더러 농담도 잘하시네. 어여! 장난 그만하고 일어나요! 어여! 그만 일어나요!”

“아닙니다! 대 시주자님이시여! 저의 간절한 소원이오니 우리 절의 장육전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주소서!”

공양주보살은 길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며 또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거지 할머니는 기가 막힌 듯 피식 웃으면서 장난질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라며 억지로 공양주보살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양주보살은 길바닥 위에 허리를 납작하게 구부리고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거지 할머니는 처음에는 공양주보살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계속 그렇게 말하자 혹시 공양주보살이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슬그머니 드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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