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에펠탑·빌헬름 교회 등
28개 건축물 통해 전쟁 역사 고찰
증축과 개축, 무너진 과정 살피며
마치 한 사람의 인생 축소판 설명

 

 

“오늘날 콜로세움은 원래 건물의 3분의 1도 남지 않은 채 뼈만 앙상한 모습이다. 전쟁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만들고 죄수들에겐 잔인한 사형장이었던 콜로세움은 1999년부터 사형제도의 폐지를 외치는 국제적인 캠페인의 상징물로 자리 잡는다. 로마시는 각국에서 사형제도가 유예되거나 폐지될 때마다 콜로세움을 비추는 야간 조명을 바꿔서 사형제도 폐지를 옹호하고 있다.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죽음의 공간이었던 콜로세움은 오늘날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건축물로 거듭났다.”( p.240, ‘콜로세움 - 생명이 여가의 수단이 된 투기의 장’중에서)

전쟁은 국가나 힘 있는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거대하고 극단적인 충돌이다. 시대마다 끊임없이 벌어진 전쟁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곤 했다.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히 갈리거나 때로 뒤집혔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민낯과 인간이 겪는 희로애락이 건축물에 자연스레 투영됐다.

승전을 기념하는 전승 기념탑과 개선문,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지은 추모관 등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파리’하면 떠오르는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프랑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모든 영광을 기리기 위해 또 다른 개선문인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을 본떠 지었다. 하지만 이 개선문조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독일군이 그 아래로 행진하는 수모를 당했다.

에투알 개선문의 모델이 된 티투스 개선문엔 2,000년에 달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 개선문은 로마인에게는 승전의 기쁨이지만, 유대인에게는 세계를 떠도는 기나긴 역사가 시작된 아프기 이를 데 없는 건축물이다.

책은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에 있는 28개 건축물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쟁의 역사를 살펴본다. 로마시대부터 냉전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현대의 전쟁사를 아우르면서, 관광 명소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 대비용 성이나 요새까지 두루 소개하며 건축물에 얽힌 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가 하면 전쟁사의 어두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제국주의의 그림자도 엿본다. 사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은 나폴레옹의 야욕과 집착의 산물이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이집트나 그리스 등의 약탈 문화재로 채워져 자국보다 다른 나라의 유물을 더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건축물엔 생명이 없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증축과 개축, 전쟁을 만나 무너지기도 하는 과정을 살펴보다 보면 건축물이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축소해놓은 것 같기도 하고, 길어야 100년 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특히 전쟁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지나온 건축물은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누군가의 얼굴 같아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건축물 중에서 유독 긴 여운을 남기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건축물이다. 안타깝게도 이 전쟁으로 인해 지어진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여럿 부서지거나 피해를 입었다. 베를린의 한복판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와 노이에 바헤가 대표적이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인 독일 정부가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부서진 종탑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노이헤 바헤엔 전쟁터에서 아들과 손자를 모두 잃은 독일의 예술가 케테 콜비츠가 만든 조각 ‘피에타’가 있다. 오늘날 베를린 시민들이 ‘빠진 이’ 또는 ‘깨진 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기념교회의 깨진 지붕,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내리쬐는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을 삼키는 어머니의 동상은 전쟁이 남긴 뼈아픈 상흔 그 자체다.

책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건축물에 얽힌 전쟁의 역사다. 에펠탑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어긴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의 용기다. 예르미타시박물관을 지킨 것은 전쟁 통에 굶어 죽어가면서도 박물관을 사수한 직원들의 노력이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책을 통해 이 건축물들이 겪은 수난의 시간을 알게 되면, 주로 관광 명소로만 알려진 이곳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진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전쟁사 역시 우연과 필연이 엮여 만들어진 거대한 드라마와 같다. 전쟁은 잊히는 반면, 건축물은 부서지고 깨어져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지나간 전쟁의 역사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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