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식(전 광주서부교육장)

 

교권(敎權)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현장의 교사들이 하루하루 견디기가 어렵다고 한다. 학생들을 어디까지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불안하고 자신감마저 없어진다고 한다. 교직 경력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목소리다.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광주지역 교사의 절반 이상은 교권이 잘 보호되고 있지 않다고 응답하였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가 교육 현장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교육이 있어야 할 곳에서 교육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며칠 전에 한 후배를 만났다. 수업 시간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지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전후 사정을 떠나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냐’는 말 한마디에 순간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목소리가 떨리고 출렁거린다. 얼마 남지 않은 교직의 끝자락에서 예기치 않은 시련 앞에 외로이 혼자 서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자업자득이라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잘못한 행위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특정인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교권을 내세워 잘못을 덮거나 무마하자는 말도 아니다. 더구나 상대방의 감정과 상처, 의견을 가볍게 듣거나 무시할 생각도 전혀 없다. 교사와 학생 모두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누구를 막론하고 최소한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교단에서 교권이 바로 서지 못하고 위축된다면 그 일차적 피해는 물론 교사들이겠지만 최종 피해자는 결국 우리 학생들이 될 수밖에 없다. 소극적이고 자기방어적인 교사들의 태도는 교육의 부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애써 못 본 척하거나 아예 그 순간을 피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비교육적이고 무책임한가? 들어보면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선도하려다가 낭패를 겪은 교사가 한둘이 아니다. 교사가 잘못을 지적하고 지도하는 과정에서 지엽적인 문제 때문에 사안의 본질은 어디로 가고 어려움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잠을 깨우는 선생님을 향해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설을 해대는 학생을 향해 그 순간 교사는 한없이 무력하고 좌절한다. 이런 학생을 처벌하라고 신고나 하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하겠는가. 이러니 수업 중에 학생이 잠자든 말든 그냥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시간을 채워가야 하는가? 흡연하거나 복도에 가래침을 뱉든 말든, 욕설과 비속어를 섞어 괴성을 지르든 말든,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든 말든 그냥 남의 자식 잘되든 잘못되든 상관없다고 한다면 교사와 학교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물론 아이들이 다 이러지는 않는다. 학교에 따라서는 전혀 이와 거리가 먼 학교도 있고 각각 그 편차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오늘도 무사히’를 주문처럼 되뇌며 아이들 앞에서 떨고 있는 선생님을 누가 지켜줘야 하는가? 각자 스스로 알아서 슬기롭게, 지혜롭게 참고 견디며 선생님이 아닌 그저 직장인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가? ‘교권보호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교권을 온전히 지켜 줄 것으로 생각하는 교사들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교사는 참 어렵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본인의 문제이고 본인이 그대로 감당해야 한다. 그 순간부터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드는 게 오늘의 교권이다.

이건 교육의 실종, 교육의 황폐화다. 잃어버린 교육의 본질을 되찾고 이를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 제도를 바꾸는 것이 진정으로 교육을 살리는 혁신 아니겠는가. ‘혁신을 혁신하라’, ‘제발 그만 혁신하라’는 역설이 왜 나오는지 뼈아픈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때다.

학생의 인권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선생님의 교권 역시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잘못한 학생을 잘못했다고 당당하게 훈계하고 지도할 수 있는 교권은 충분히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교사가 교육활동을 하면서 발생한 모든 법률적 분쟁에 초동단계에서부터 법률전문가의 충분한 조력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권보호를 위해 ‘교권 존중 풍토’와 ‘교권보호위원회의 법적 권한 강화’를 교사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점에 주목해서 실질적인 교권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가르침 앞에서 위축되지 않는 의연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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