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세평]기초학력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최영태(전 전남대 인문대학장)
 

지난 9월 7일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2020년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어려운 비문해 성인은 4.5%(약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성인 인구의 약 4.5%가 현대판 문맹자라는 의미이다.

기본적인 문해 능력 부족자는 성인에게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재학생 중에서도 기본적인 문해 능력 부족자가 많이 존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학생 중 읽기·수학·과학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학생의 비율이 2009년 6.7%에서 2018년 14.8%로 급증했다. 가정환경이 하위 20%인 학생의 읽기 최하위 등급비율은 더욱 떨어져 2012년 13%에서 2018년 25%로 증가했다. 작년부터 시작한 ‘코로나19’는 소득 간 학력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글을 읽고 쓰며 계산하는 능력은 인간이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초적인 자산이다. 의무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그런 자산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기초학력 부족 학생이 증가한다는 것은 의무교육의 정신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공교육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지난 8월 31일 국회에서 기초학력보장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국가가 아이들의 기초학력을 책임지겠다는 법적 약속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일단 반가운 일이다. 크게 환영한다.

이 법에 따르면 앞으로 교육부 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교육감과 협의하고 기초학력 보장위원회 심의를 거쳐 5년마다 기초학력 보장 종합 계획을 수립하도록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하였다. 또 학교의 장은 학습지원대상 학생의 조기발견 및 지원을 위한 기초학력 진단검사를 할 수 있고 그 결과를 학생의 보호자에 통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습지원 대상자의 경우 기초학력진단검사 후 학급담임 교사 및 해당 교과 교사의 추천, 학부모 등 보호자에 대한 상담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정하도록 하였다.

기초학력보장법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효율적인 학급지원 교육을 위하여 학습지원 교육 담당 교원을 지정하고 보조 인력을 배치할 수 있다.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은 기초학력 지원센터를 지정 운영하여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보장하고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지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독일 교육이 ‘꼴찌도 행복한 나라’이고 ‘경쟁이 없다’라는 점에 큰 흥미를 갖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독일 교육에 유급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에서도 대부분 주가 초등학교부터 유급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교육 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에도 유급제도는 있다. 이들 나라는 기초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에게는 유급에 앞서 방과 후 혹은 방학 동안에 보완 교육을 한다. 그러고도 안 되면 최후 수단으로 유급을 시킨다. 기초학력은 ‘모두 함께 가는 교육’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유급제도가 없다.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계속 잠을 자도 특별히 말썽을 피우지 않는 한 고등학교 졸업까지 무사통과이다. 의무교육과 무상교육 시스템하에서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냥 내버려 지는 셈이다.

기초학력보장법은 선언적 의미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부가 최근 기초학력 부족 학생들을 지도할 방안을 발표했다. 대체로 긍정적 평가이지만 교원 수급과 예산 배정에서 신뢰가 안 간다는 지적이 많다. 기초학력보장법이 통과된 만큼 기재부가 재정적으로 교육부의 구상을 뒷받침해줘야 한다. 학부모도 자녀들이 기초학력 미달자로 판정되면 학교의 지도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왕 기초학력 보장을 국가가 책임지려면 기초학력 진단검사를 전국적 차원에서 실시했으면 좋겠다. 기초학력 부족자에 대한 대응책은 다소 강제적이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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