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식(전 광주서부교육장)

 

정권이 바뀌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작심하고 잘해 보려는 의지와 열의가 넘친다. 이른바 전문가 집단이 각 분야에서 개혁해야 할 과제들을 선정해서 의욕적으로 나선다. 그리고 새로운 추진 주체가 제시한 비전과 정책을 보며 다수의 국민은 큰 기대와 함께 그 귀추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 추진과정에서 곧바로 극심한 갈등과 의견 대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분명히 옳은 것처럼 보이는 일도 수많은 논란에 휩싸이고 담론이 넘쳐나기 시작하면 곧 혼탁한 논리의 수렁 속에 빠지고 만다. 그러다 보면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서 추진 과제를 잠시 유보하거나 수면 아래로 내려놓고 긴 숙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른바 지지율에 부담을 주는 위험한 모험을 애써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정부 시절 교육개혁위원회가 1995년에 내놓은 5·31 교육개혁안은 대한민국 교육의 질적 변화를 예고했다. 핵심 가치인 ‘자율’을 강조하면서 대학입시와 학교교육의 변화를 선도하려고 했다. 그리고 김대중정부 시절의 ‘여러 줄 세우기’도 그렇다. 고질적인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절대 필요한 가치이고 교육적으로도 마땅히 그리해야 하는 당위의 문제였다. 또 이명박정부에서는 얼마나 ‘자율’을 강조했던가? 문재인 정부 역시 그러하고.

하지만 학교교육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지만 과연 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하기 어렵다. 각종 논문이나 토론회, 공청회 등에서 관성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문제 제기와 여론을 환기하는 주장들이 나왔지만 닫힌 공간 속의 공방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제 제기를 위한 문제 제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게 정직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과연 교육계 내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모두가 전전긍긍하는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높은 연봉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거부할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그러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생사를 건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좀 심한 비유일지 몰라도 아프카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해 카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과도 흡사하다. 탑승할 수 있는 비행기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면 굳이 이런 모습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못 타고는 곧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이런 경우에 도덕성이니 양심이니 하는 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불꽃 튀는 경쟁의 원인이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에 있음을 웅변으로 보여줄 뿐이다.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재화분배구조이다. 경쟁의 원인이 결과를 낳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만들고 상황을 더욱 조장 내지는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우리보다 더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대학진학률이 높지는 않다. 대학을 가든 안 가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나름대로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면 굳이 교육이 이토록 척박할 필요가 없다. 이러기 위한 전제가 합리적인 재화 분배 구조가 아닐까?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가 인정받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토록 자신을 옥죄는 입시경쟁 대열에서 주눅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

요즘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 앞에서 ‘자율’이나 ‘개인 맞춤형교육’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창의성이나 문제해결력. 자기주도적 학습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 처음 들어본 말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여러 줄 세우기’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교육을 둘러싼 외부적 요인이 철저하게 내부적 요인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좋은 가치들도 외면받기 쉽다.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온 것을 언제까지고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인간적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재화분배구조 마련과 교육계 내부의 변화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넘어 진정한 미래교육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과감하게 열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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