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채찬란 모노크롬’ 모순된 주제
역동성·확장성으로 새 출발 강조
전통 한국화 기법·정신 활용한
서양화·미디어·설치 등 다채
과거·현재 토대 미래방향 모색
수묵 생활화·대중화 탐색 전시도

 

이건수 제2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총감독이 관람객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오채찬란 모노크롬’. 이달 31일까지 계속되는 제2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주제다. 여러 가지 빛깔이 한데 어울려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의 오채찬란과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을 의미하는 모노크롬(monochrome)이 함께 있다. 직역하면 ‘온갖 색채가 화려한 단색화’ ‘컬러풀한 수묵’으로 모순된 표현이다.

주제는 한국화의 전통에서 출발한다. 한국화는 재료에 따라 크게 수묵화, 채색화로 분류된다. 수묵화는 흔히 붓과 먹으로만 그리는 문인화다. 채색화는 민화나 벽화 등 다양한 색채가 들어간 그림이다. 그런데 채색화는 ‘환쟁이’ 표현에서 보듯 한동안 천시받으면서 수묵화는 곧 문인화로 인식됐다고 한다. 수묵화나 채색화 모두 선과 여백을 중시하고 먹의 농담과 번짐을 통해 표현하며, 내면의 정신세계를 중시하는데도 ‘색’이 있고 없고를 떠나 달리 평가받은 것이다.

따라서‘오채찬란 모노크롬’에는 우리 채색화의 전통과 수묵화의 전통이 어우러진 온전한 한국화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수묵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배 作 ‘붓질’
박대성 作 ‘천년배산’

최근 찾은 목포와 진도의 수묵비엔날레 현장에서 ‘오채찬란 모노크롬’을 실감했다. 본전시관인 목포문화예술회관에 전시된 전통 수묵화와 서양화, 미디어아트, 설치, 조각 등 15개국 작가들의 다양한 장르 작품은 수묵을 중심으로오색찬란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특히 전문 미술전시장으로선 미흡한 공간적 한계에도 전통과 현대, 전문성과 대중성, 국제성과 지역성을 강조한 작품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작품에 관람객들로선 ‘수묵비엔날레에 웬 미디어아트, 서양화?’ 라는 궁금증을 가질만 했다. 이건수 전남수묵국제비엔날레 총감독의 “ 수묵화의 동양적 정신과 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이다”라는 말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수묵의 전통과 정신을 기반으로 한 국내외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는 것이다.

이재삼 作 ‘달빛’

우국원 작가의 ‘Tomorrow, Tomorrow, I love your Tomorrow’는 글자와 그림의 조화로 조선 서화의 맥을 잇고 있는 작품이다. 할아버지 오지호, 아버지 오승우에 이어 화업을 일구는 오병욱의 ‘그림의 표면-송림’은 서양화를 동양화 준법으로 그렸다. 유럽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는 이배는 서양화가이지만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붓질’작품을 전시했다.

방탄소년단 RM이 전시회를 찾아 화제가 됐던 윤형근 화백의 ‘청다색’에는 문인화 정신이 배어 있다. 전시관 로비에 설치된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박연폭포’ 역시 전통 수묵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 감독이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꼽은 황창배의 ‘무제’는 전통 수묵채색화를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그림으로 수묵의 현대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안토넬라 레오니, 데니스 스미스, 스텝 드리센, 리너스 반 데 벨데, 쿤 반 덴 브룩, 파울로 데 우바 등 유럽 작가들과 작품을 초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달초교(옛 심상소학교) 전시장의 ‘신세대 도원경전’은 제목에서 보듯 젊은세대 동양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지아나, 문성식, 손동현, 이해민선 등 90년대 포스트모던 이후 태어난 작가들의 작품은 실험적이어서 생경한 느낌을 준다. ‘이런 작품도 수묵과 관련있나’ 싶을 정도로 역동성과 창의성이 눈에 띄었다.
 

목포 유달초등학교(옛 심상소학교)에 전시된 ‘수묵정신전’ 작품. 지필묵이라는 수묵의 본래적 재료와 기법을 초월해 어떻게 수묵의 정신성이 구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전시다

‘수묵정신전’은 전시장 건물 2층의 넓은 강당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이 18분짜리 영상으로 보여진다. 지필묵이라는 수묵의 본래적 재료와 기법을 초월해 어떻게 수묵의 정신성이 구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전시다. 코로나19로 해외 작가들의 직접 참여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만든 작품으로 스크린에 비쳐지는 오색찬란한 작품과 함께 들려오는 웅장한 사운드는 수묵의 확장성을 웅변한다.

올해 전남수묵비엔날레의 특징 중 하나는 ‘생활 속의 수묵’이다. 진도의 남도전통미술관과 소치미술관에 전시된 사진, 영상, 도자 공예, 의류공예, 조명 등 작품은 수묵이 우리 실생활에 어떻게 스며들고 활용되고 있는 지를 탐색한다. 손문일의 ‘관계-11’은 먹과 붓을 이용해 남성 정장을 그린 작품으로 마치 사진을 보는 듯 하다. 한경우의 ‘플라스틱로샤 블랙’은 검정비닐을 이용해 박쥐의 다양한 동작을 형상화했다.

수묵의 대중화 차원에서 소치미술관이 있는 운림산방에선 오는 27일 수묵 패션쇼가 열린다. 가수 송가인과 포레스텔라 팀 등이 참여하는 콘서트도 진행한다.
 

수묵의 생활화에 초점을 맞춘 진도 남도전통미술관 전시 모습.
진도 남도전통미술관에 전시된 한경우의 ‘플라스틱로샤 블랙’ 작품. 검정비닐을 이용해 박쥐의 다양한 동작을 형상화했다.

수묵비엔날레는 올해 두 번째다. 첫 행사가 우리 수묵의 전반적인 지형도를 보여준 전시였다면 올해는 우리의 미적 전통이 얼마나 세계적인 보편성을 모색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고 실험하는 장이다. 이를 위해 남도 수묵 전통의 가치를 현대에 맞게 되살리면서, 전문성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예술언어, 지역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획득하려는 차별화된 비엔날레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곳곳에 베여있었다.
 

손문일의 ‘관계-11’. 먹과 붓을 이용해 남성 정장을 그린 작품이다.

이건수 총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처럼 전남과 남도만이 갖고 있는 문화자산을 세계인이 공감하는 K-컬처로서 나아갈 길을 제시하려고 고민했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전시 부제를 ‘생동하는 수묵의 새로운 출발’로 정했다 ”고 설명했다.

이번 수묵비엔날레는 목포와 진도를 비롯 광양, 여수, 구례, 강진 등 전남 11개 시군과 광주광역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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