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식(전 광주서부교육장·굿네이버스 광주지역후원회장)

 

한 그루의 명품 탱자나무가 500년의 세월을 자랑하고 있다. 백암산 자락 아래 한적한 암자의 한 모퉁이에서 봄날의 하얀 꽃을 소리 없이 자랑하더니 여름날의 태풍과 무더위를 오롯이 담아 청명한 가을 햇살 아래 500년을 지켜 온 노란 열매의 약속을 올해도 어김없이 지키고 있다.

대단한 귀물이다. 오직 한 그루여서 더욱 그럴까? 주변은 비자나무숲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벽돌이나 철망으로 된 담장이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시골집이나 과수원 울타리를 충직하게 지키던 탱자나무 울타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또 그 촘촘한 가시의 위세 때문에 친근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엄숙하고 가까이하기 힘든 나무이기도 하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도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유명한 재상 안영이 한 말이다. 초나라 왕이 안영에게 제나라 출신 도둑을 내세워 제나라 사람들을 싸잡아 비하하려는 말에 응대한 말이라고 한다. 초나라의 환경이 문제이고 그에 따라서 사람의 성정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탱자는 귤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어디까지나 귤은 귤이고 탱자는 탱자일 뿐이다. 처음부터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비교를 통해 평가절하하는 일은 온당치 못하다. 귤은 귤, 탱자는 탱자의 독특한 향기와 쓰임으로 세상에서 각각 소중한 존재의 빛을 발하고 있어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잘못 중의 하나가 쓸데없는 비교이고 비교를 한다 해도 이 경우처럼 잘못된 비교를 하는 경우이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현장에서 이런 실수나 잘못은 자신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로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거나 기를 꺾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절대로 해서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에도 이런 사례가 많다. ‘호박꽃도 꽃이냐?’, ‘멸치도 생선이냐?’, ‘도토리 키 재기’ 등등 무심코 내뱉는 말속에 철저하게 존재를 부정하는 의미가 고약하다. 호박꽃을 국화나 장미, 멸치를 조기나 고등어와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 지 여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도토리를 굳이 키를 잰다면 도토리와 키를 재지 그럼 감이나 밤과 해야 한단 말인가.

근본적으로 학교의 개념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단순 경쟁 논리로는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 잠재적 가치를 오롯이 발휘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저마다 타고난 자질과 개성이 다르고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 교과 성적으로 단순 비교해서 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학교와 교실이 비록 여럿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지만 각자 다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진로학습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교육은 인간을 가꾸는 종합서비스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도록 찾아서 도와주고 조장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우리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다. 이를 뒷받침하는 개별 맞춤형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중앙에 집중된 교육 권한이 지방화, 분권화에 걸맞게 지역으로, 학교로 교사에게로 과감하게 이양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말로만 맞춤형이니 창의성이니 자율성 등을 구호처럼 강조할 게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 자꾸만 비교를 강요하는 구태교육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에 충실해질 수 있어서다.

500년의 선물! 앞으로도 그 끝 모를 세월의 신화를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토템적 기원을 탱자나무님께 경건하게 올린다.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지켜 온 약속처럼. 나무여, 나무여, 비교의 핀잔을 뛰어넘어 거뜬히 세월을 이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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