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구축 물때지식, 오늘날까지 전승·활용
전통 어부들 ‘물때’세면서 조류 주기 ‘예측’
국립해양조사원, 날짜별 전통 물때이름 제공
수협에서도 물때달력 제작… 어업인에 배포
국가 차원 통일 규격 없어 사용 탓 혼선 빚어

 

진도군 조도군도 전경./남도일보 DB

섬과 해안가의 사람들은 바닷물의 드나듦으로 발생하는 조류의 흐름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조류의 변화로 발생하는 조석간만의 차는 ‘물때’라는 민속지식으로 전승되었고, 바닷사람들은 그 ‘물때’를 세어가면서 조류의 주기를 예측하였다. 특히 조석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과 남해안지역에서는 조류를 이용하는 고기잡이 어법이 발달하였고, 주민들의 생활도 조류의 주기에 따라 변화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 바다지식으로서 물때력(潮汐曆)

조류의 영향이 고기잡이 외에도 삶의 다양한 부분에 걸쳐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에 조류의 움직임은 어떤 면에서 역법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육지에서 시간을 계산하는 역법으로 태양력과 태음력을 구축했듯이 바다에서도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15일간의 물때력(潮汐曆)을 구축하였고, 그 물때에 따라 생활도 주기성을 갖는다. 물때력은 지구와 달의 만유인력을 중심으로한 천체운동의 결과이기에 바다를 이용하기 위해 15일 단위의 주기율을 역법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조류의 이동을 독자적인 역법으로 체계화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조선 태종 때부터 확인된다. 1413년(태종 13년)에 태안 안흥량에 운하를 건설하기 위한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결같이 매월 보름과 그믐에 여섯물(六水)에서 열물(十水)에 이르기까지는 사도(沙渡)에서 대선(大船)이 남쪽 방축에 이를 수 있습니다.”라고 하여 숫자체계의 물때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국가정책을 논하는 과정에서 물때력(潮汐曆)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까지 전승되는 물때 체계가 최소한 조선시대부터 널리 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물때지도./송기태 제공

#바다 물때지식의 두 체계 ‘7물때식과 8물때식’의 병존

그런데 한국의 물때력은 일명 서해안식·남해안식으로 구분되어 2개의 물때 체계로 존재한다. 음력 초하루의 물때를 서해안에서는 7물(일곱물)로 세고, 남해안에서는 8물(여덟물)로 세는 것이다. 이 또한 조선시대 기록 중에서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집필한 백과사전 형식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득량만에서 동쪽으로는 초하루를 8물로 세고, 진도 해역부터 서해안 일대는 초하루를 7물로 센다고 하여 2개의 체계가 병존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최근 물때지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음력 초하루를 7물로 세는 지역과 8물로 세는 지역이 일정한 ‘물때라인’으로 구획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서해안에서부터 전남 장흥~완도 청산도 ·제주 조천 ·제주 강정항에 이르는 서쪽 해역은 초하루를 7물로 세고, 이를 기점으로 동쪽 해역에서는 초하루를 8물로 세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때라인은 조류의 이동이 가장 약한 ‘한물’의 최대 간조시간이 자정에 형성되는 지역과 관련되어 있음을 추론하는 데까지 진행되고 있다. 천체운동에 따라 표준시간을 정하듯 물때체계 또한 일정한 표준시간을 고려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전통시대의 물때력(潮汐曆)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었음을 추론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물때체계의 현대적 활용과 혼돈

전통시대에 구축된 물때지식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조석의 변화를 기록하고 예보하는 국립해양조사원에서도 날짜별로 전통 물때이름을 제공하고, 수협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 물때달력을 만들어서 해안가 주민들에게 배포한다. 최근에는 민간의 스마트폰 어플이나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물때이름을 제공하고 있다. 전통의 물때지식이 현대까지 전승되고,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의 물때체계는 현대적 활용에서 혼돈상을 드러내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에서는 3개의 물때체계를 제공한다. ‘일반적 물때식’, ‘7물때식’, ‘8물때식’이라고 하여 같은 날짜에도 3개의 물때이름을 표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2년 1월 13일 진도의 물때를 주민들은 ‘두물’이라고 하는데, 일반적 물때식으로 ‘한매’, 7물때식으로 ‘두매’, 8물때식으로 ‘세물’이라고 표기한다. 일반적 물때식은 1980년대 한 학자가 “민간의 물때지식이 지방마다 다르고 뒤범벅”이라고 하여 6물때식을 제안한 것으로 실제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국립기관에서 수용하여 일반적인 것처럼 제공하는 것이고, 8물때식은 진도지역과 관련이 없는 체계다. 즉, 민간에서 오랜기간 구축한 물때체계를 국가에서 온전히 또는 슬기롭게 수용하지 않고, 임의로 재단하여 혼돈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협과 농협을 비롯한 다양한 관공서의 물때달력도 혼돈을 가중시킨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통적인 물때이름을 반영한 물때달력을 제작하여 민간에 배포하고 있는데, 민간의 물때명칭 및 물때체계와 미세하게 다른 체계로 구성하여 혼동을 주고 있다.

서해 5도에서 ‘물’을 고구려의 고어인 ‘매’를 주로 사용하고, 열매 이후부터 ‘한개끼, 대개끼, 아치조금, 한조금, 무시’라고 이름 붙이는데, 수협 달력에서는 ‘11물, 12물, 13물, 조금, 무쉬’라고 표기한다. 진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열물 이후부터 ‘한개끼, 대개끼, 아침조금, 한조금, 무수’라고 하는데, 수협이나 농협 달력에서는 ‘11물, 12물, 대객기, 아침조금, 한조금’라고 표기한다.

문제는 국립해양조사원이나 관공서를 통해서 제공된 물때지식이 공식화된 것으로 포장됨으로 인해 혼돈상을 형성하는 데 있다. 60~70대 이상의 주민들은 전통적인 물때체계를 인식하고 있지만, 젊은 세대는 물때달력을 보고 물때이름을 인식한다.

따라서 전통시대에 체계적으로 구축된 물때지식이 온전히 전승되지 않고, 국가와 관공서의 임의적 재단으로 인해 혼돈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하여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에서는 2021년 국립무형유산원의 연구사업으로 전국의 물때지식을 조사하고, 2022년에 단행본을 제작할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바다 물때체계가 현대적으로 적용 및 활용되기를 바란다.

글/송기태(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교양학부 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