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렇다면 그 작지 않은 쉰 냥이란 커다란 돈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막말로 박옥주가 그 돈 백 냥 안 주겠다고 버틴다 해도 이 일을 관가에 발고(發告) 하지도 못할 일이고, 어디에다 내놓고 거론했다가는 도리어 관가에 붙잡혀가 크게 경을 칠 못된 일, 즉 범죄 행위였으니 말이다.

‘아아! 이러다간 돈에 한순간 눈이 멀어 역으로 자기 꾀에 자기가 꼼짝없이 목이 붙잡혀 버린 꼴이 되어 내 발 내가 도끼로 찍고 수렁에 깊이 빠져 버린 처참한 꼴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더구나 차지하려 한 돈 쉰 냥은 고사하고, 대신 신과부에게 주어야 할 돈 쉰 냥을 고스란히 덤터기 쓰고 말게 될 수도 있을 것이거니! 어어! 어흐흐흑!’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윤과부는 머리가 찌근거리고 속이 확 뒤집혀 올라 정신이 그만 아득하여 그곳에 푹 쓰러져 고꾸라지고 말 지경이었다.

괜히 공돈 몇 푼 얻어먹을 것에 눈이 뒤집혀 남의 부잣집 꼽추 아들 혼사 일에, 그것도 올바른 일이 아닌 부정한 방법으로 벌이려는 혼사 일에 깊숙이 끼어들어 ‘죽 쒀서 개 준다더니, 개 구워서 호랑이 좋은 일 시킨다더니, 결국 저 능구렁이에 살쾡이 같은 박옥주 좋은 일만 해주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순간 숨이 가빠오고 눈앞이 캄캄해 오는 윤과부는 걸어가던 뉘 논 머리 길 위에 풀썩 주저앉아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아 참! 그런데 박옥주 그 인간이 방금 헤어지기 전에 내일 오후에 돈을 가져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그렇지!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놈도 사람인데 돈에 눈이 멀어 그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짓이야 하겠어? 서로 살까지 섞고 산 사이인데 말이야!……

아니야! 그놈이 괴이한 자본교인가 뭔가를 들먹이며 하늘 같은 임금님에 호랑이 같은 나리님들을 마구잡이로 욕질하는 꼴이 여차하면 큰일을 낼 흉악무도(凶惡無道)한 자인 것 같은데,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니야! 아이구! 아이구!……그렇다고 설마! 제 놈이 그렇게나 철면피한 악한이겠어? 내일 온다고 했으니 한번 믿어봐야지. 제 놈이 뛰어야 벼룩이지. 그놈이 도망간다면 그놈 집에 쫓아가서 불을 콱! 싸질러 버리면 될 것 아니야!

그래, 그렇지! 나라고 당할 수만은 없지. 이판사판 죽건 말건 너 죽고 나 죽고 하면 될 것이야! 피 같은 돈 쉰 냥이 누구 아이 이름도 아니고, 그래,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이제는 이판사판이야! 아암! 그렇지 그렇구 말고! 이놈 세상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어! 만약 박옥주 그놈이 약속한 돈 백 냥을 아니 가져오면 그 가슴팍이 살을 이 이빨로 한입 앙! 물어 뜯어버리면 그만 아니겠어! 그렇지! 그렇지!’

윤과부는 오락가락 떠오르는 생각들에 끓어오르는 분독(憤毒)을 간신히 억누르고 갈팡질팡 정리하면서 독하게 마음을 다져 먹자고 다시금 마음을 단단히 추스르고 일어서더니 집을 향해 걸어갔다.

땅거미가 몰려오고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찰나에 윤과부가 급히 집 대문을 들어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문 앞에 호랑이 얼굴빛을 한 저승사자 같은 신과부가 떡 버티고 서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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