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영란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석사 때 한문 공부를 위해 광주광역시 방림동에 사시는 한학자 윤정복 선생님께 ‘소학(小學)’을 배우러 다녔다. 소학을 공부하던 중, 선생님께서 등 뒤편 문을 열고는 홍시를 꺼내 주시면서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는 여러 명 낳아야 한다. 가정에서 사람의 모든 것이 시작되니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아야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무슨 말씀인가 했다. 결혼하고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이제는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요즘 5포 세대라 하는가?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라고 한다. 점점 관계는 사라지고 혼자 덩그러니 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형성되고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나와 타자와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연애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깨닫고 알아차릴 때 타자와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살아가게 된다. 고대 사회 가정에서는 ‘소학’을 배웠는데, ‘소학’은 한문을 공부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해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학’의 첫 장인 ‘입교(立敎)’에서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게 하여, 인간이 이 세상에 나오기 전 어머니의 배속에서부터 성장하기까지 인생의 로드맵을 제시해 준다. 여성이 임신했을 때의 행동, 음식, 마음가짐의 태도 즉 어머니와 태아의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삶의 시작은 이 세상을 나오면서부터가 아닌 어머니의 배속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아는 진리이다. 한 인간의 관계는 바로 어머니와 태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관계를 배운다.

‘소학’에서 여성은 임신하면 잠을 잘 때 기울게 하지 않으며, 앉을 때 모서리에 앉지 않으며, 설 때 한쪽 발로 서지 않는다. 또 부정한 맛을 먹지 않으며, 고기를 썬 것이 반듯하지 않거든 먹지 않으며, 자리가 바르지 않거든 앉지 않는다. 눈으로는 부정한 색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부정한 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하여 태아와 어머니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이와 같은 관계를 형성하여 낳은 아이는 용무가 단정하고 재주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 속에서 이미 인간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한 인간은 6세부터 남녀의 관계, 어른과의 관계, 스승과의 관계를 터득하면서 성장하고 성인의 예를 갖추는 20세에는 아직 정밀하지 않음을 깨닫고 안으로의 아름다움, 외부로의 겸손함을 잊지 않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방법을 ‘소학’에서 말해준다. 또 30세에는 친구와의 관계, 40세에는 직장에서 동료와의 관계, 50세에는 아랫사람과의 관계를 배운다.

‘소학’의 ‘입교’ 가운데 “사람에게 도리가 있음에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어 편안히 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깝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를 근심하시어 관직을 설치하여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부모와 자식은 친함이 있으며, 군신(君臣) 간에는 의리가 있으며, 부부 사이에는 분별이 있으며,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라는 ‘맹자’의 말씀으로 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였다.

‘소학’을 배울 때만 해도 여자와 남자의 역할을 구분하여 여자는 가정에서의 역할로, 남자는 사회에서의 역할로 한정하는 한계성이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성,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으로만 ‘소학’을 읽기보다는 “관계”의 시각으로 ‘소학’을 바라보면, 나와 타자와 관계 안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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