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천 (주)KFC 대표이사· 경영학 박사

최형천 KFC 대표이사· 경영학 박사

얼마 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그들의 보행권을 일반인처럼 보장해 달라며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출근길 시위를 하였다. 보행권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임에도 휠체어를 탄 그들에게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그야말로 목숨을 건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달부터 집권하게 되는 정당의 대표가 이들의 행동을 문명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비난하면서 논란거리가 되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소수가 다수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는 문명적이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그 뒤 방송사 주최로 상호 토론이 이루어졌지만 서로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 이유는 향후 집권당이 사회적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미리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사회적 약자들이 호소의 수단으로 시위를 택했을 때 비난하기 보다는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오히려 문명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민주시민이라면 이런 정도의 염치는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이며, 이런 기제가 작동하는 사회가 문명사회일 것이다. 반대로 이들을 장애물처럼 여기는 태도야말로 반문명이며 야만일 것이다.

약자가 선택한 시위는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외침이자 절규인데도 관심은커녕 오히려 비난하는 행위는 극히 야만적이다. 야만성의 근거는 그 의도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만이 아닌 온갖 종류의 압박, 정치적·사회적 폭거 또한 폭력에 해당한다.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정치 유망주라는 그가 힘 있는 다수의 편에 용감하게(?) 서는 모습이다. 정상인이 다수이고 이들의 호응을 얻는다면 권력을 쉽게 쥘 수 있다는 트럼피즘적 논리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정치는 비통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정치가 힘 있는 사람들은 도울 일은 별로 없다. 제도와 법률이 강자 편이기 때문이며 억울한 일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어서다. 또한 정치는 편을 가르고 반대편에 서있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공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견에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그에게 왜 정치를 하는지 묻고 싶다.

사회적 통합의 문제를 천착해온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인정투쟁‘이라는 개념으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인정투쟁이란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인간은 인정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상호 인정을 주고받으면서 긍정적인 자아를 구축해 간다.

반대로 지속적으로 타인의 무시를 경험할 때 스스로를 무시하게 되고 이런 부정적 자아가 형성되면 생존 의지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 무시와 모욕은 자아 정체성에 대한 도덕적 위협이며, 이에 대한 심리적 반작용으로 분노의 감정이 촉발되어 마침내 폭동이나 봉기와 같은 사회적 투쟁으로 표출된다.(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2011)

호네트의 논리에 의하면 지금 장애인들은 무시와 모욕에도 불구하고 인정받기 위해 호소하고 있지만 힘 있는 정치인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서 사회적 갈등의 증폭이 염려되는 상황이 되었다. 자아실현은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하며, 이런 인정관계의 확립을 통해 개개인의 존중받는 삶과 정의로운 사회 실현이 가능하다는 호네트의 충고를 음미해 보아야할 시점이다.

끝으로 문명이 발전이라는 명제는 옳다. 한편에서는 문명을 물질적 발전에 주목하고 효율과 편리의 잣대로 평가한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를 문명과 야만으로 나누고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편 가르기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환경적으로 불운하거나 덜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사회가 갖는 최상의 특성이 발현되고 휴머니즘의 완성으로 나아가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회가 문명사회라고 본다. 이런 두 가지 문명관이 통합되어 실현되는 사회가 진정한 문명사회가 아닐까?

누구에게도 불행과 아픔은 찾아올 수 있다. 인간이란 그런 숙명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지금 불행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좀 더 따뜻한 품성을 지닌 정치인의 진실된 치유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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