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남도청·시민 이야기 5·18 재현
가변형 무대로 관객 무대로 끌여들여
역사적 특성·전용극장 등 장소 특화
亞전당만의 특화 콘텐츠 성장 ‘기대’

5·18민주항쟁의 중심지였던 옛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조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그날의 역사적 사건을 되새기게 하는 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사진은 지난해 선보인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공연 일부./국립아시아문화전당

80년 광주시민의 처절함 외침과 계엄군의 총기난사 장면 등 그날의 상황을 대변하는 잔인한 장면 없이도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아픔을 그대로 전달하는 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돼 화제다. 극단 하땅세의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을 기념해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을 선보였다.

작품은 옛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전남도청 건물과 같은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전남도청 벽을 하얗게 칠하던 ‘칠장이’ 영식과 아내 명심, 그리고 아들 ‘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한다.

공연은 2008년 옛 전남도청 철거가 한창인 현장에서 광주항쟁으로 아들과 아내를 잃은 영식이 뛰어내리면서 시작된다. 이러한 첫 장면은 관객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암전으로 인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영식의 죽음을 암시하며,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들리는 주변사람들의 비명과 웅성임은 긴장감을 더한다.

커튼콜을 받는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출연진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그 순간 무대 한켠에 조명이 비추면서 의문의 할머니 3인이 등장한다. 조명 속에 등장한 할머니 3인방은 멈춰버린 구경꾼들과는 달리 뒷걸음으로 관객을 지나치면서 “시간이…되돌아가네”라는 말을 남기는데, 알 수 없는 섬뜻함이 관객 곁을 맴돌고, 동시에 무대의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감을 인지하게 된다.

작품 속에는 크게 3개의 시간축이 존재한다. 영식과 명심이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 ‘혁’이 태어나는 1960~61년과 광주항쟁의 당시인 1980년, 옛 전남도청이 철거되는 2008년이다. 배우들은 3개의 시간적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극을 전개해 나간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무대는 첫 장면과 달리 분주한 도청 사무실을 연출하면서 옛 전남도청을 되살린다. 그 속에서 의문의 할머니 3인방은 다시 등장해 명심에게 풋사과를 건네고, 명심은 풋사과를 통해 ‘칠장이’ 영식과 만나게 된다. 또한 할머니 3인방의 풋사과는 후반부 광주항쟁으로 죽음을 맞이한 명심을 불러내 굴러다니는 사과를 함께 줍는다. 이러한 장면에서 할머니 3인방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들은 생명을 점지하고, 거둬들이는 삼신할머니인 것이다.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공연 일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풋사과 역시 생명을 은유적으로 비유한다. 공연 막바지 어린 혁이 먹다 남겨놓은 사과를 계엄군이 군홧발로 무참히 짓이기는가 하면, 명심의 죽음을 붉은 사과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광주 또는 5·18을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 등을 통해 역사적 상황을 암시하며,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조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그날의 역사적 사건을 재현해 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국내 최대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인 ACC 예술극장1에서 펼쳐진 만큼 공간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해 관객을 극 속으로 이끌었다. 일반적으로 고정된 객석과 달리 사방으로 분할된 4개의 구역으로 객석의 방향을 틀거나 앞뒤로 이동하면서 장면을 전환시켰다. 이러한 장면 전환은 관객들에게 반전으로 다가섬으로써 극의 집중도를 더욱 높였다.

이처럼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옛 전남도청의 역사적 장소와 특수 무대 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만 관람할 수 있는 브랜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날의 잔인한 장면을 재생시키지 않아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광주항쟁을 인지시키고, 역사적 교훈을 전달하는 여운을 남김으로써 그 의미를 더한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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