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우리 역사와 115년…교육·문화 자산 ‘풍성’
1907년 일본인 교육시설로 개교
2층 적벽돌 건물에 슬레이트 지붕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움 자랑
개교 당시 벽난로 등 최고급 시설

 

광주시내 한 복판에 자리한 중앙초등학교는 1907년 일본인 학교로 출발해 115년에 이른 굵직한 역사와 함께 해왔다. 100년이 훨씬 넘는 학교답게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 등 갖가지 이야기와 소중한 교육·문화자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빨간 벽돌, 흰색 지붕 건물은 1930년대 지어진 중앙초 건물. 가운데 아래쪽은 학교통폐합 위기를 넘기고 지난해 완공된 광주 문화예술누리센터 모습./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광주 중앙초등학교 본관 입구에 조성된 작은 연못./임문철 기자

‘자주독립’ 기념비·구내이발관
구석구석 역사 흔적 고스란히 간직
저출산·도심공동화로 32명 재학
통폐합 위기 문화예술교육으로 극복

갤러리와 화방이 즐비한 광주 동구 궁동 ‘예술의거리’를 따라 걸으면 광주 중앙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다. 전형적인 빨간 벽돌 건물에 하얀 페인트를 입은 슬레이트 지붕이 인상적이다. 학교는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지붕에 돌출된 삼각형 모양의 창 4개가 방문객에게 눈 인사를 하는 듯하다. 건물을 받치는 중간 중간 붉은 기둥은 지붕까지 올라와 있다. 환기구다. 요즘 지어진 학교들과 사뭇 다르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벽돌, 창문마다 오래된 세월이 묻어 난다.

광주시내 한 복판에 자리한 중앙초는 1907년에 출발해 115년에 이른 굵직한 역사와 함께 해왔다. 100년이 훨씬 넘는 학교답게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 등 갖가지 이야기와 소중한 교육·문화자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과 도심공동화와 재개발, 문화예술 공간 확충 등 근래 들어 광주 교육이 안고 있는 현안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광주 중앙초등학교의 1948년 9월 정문 모습. 정문 양쪽에 광주중앙공립국민학교와 광주계림공립국민학교 현판이 있다. 인근에 계림초등학교가 신축될 때까지 두 학교 학생들은 같은 교문과 건물을 사용했다. /광주시 제공

◇일본인 자녀 학교로 출발

일제 강점기인 1907년 6월 1일 개교한 중앙초는 일본인 소학교로 불로동 일대서 출발했다. 일본인들이 심상고등소학교라는 이름으로 세웠다고 한다. 개교 당시 학생은 6명. 1913년 지금의 궁동 일대로 옮겨왔다. 궁동 초기의 학교는 3천여 평의 부지에 나무로 지은 단층건물이었다. 여기에 주로 일본인 학생 200여 명이 재학했다. 현재 남아 있는 적벽돌 건물은 1933년에 지어졌다. 그 뒤에 본관 옆을 증축해 지금의 모양이 됐다.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는 1945년 대한민국 독립 후 중앙국민학교로 개교해 한국인 학생들이 다닐 수 있게 됐다. 본관 건물은 전형적인 빨간 벽돌 건물로 외부와 내부를 거의 고치지 않고 일제강점기 건축 당시 모습을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 하교는 본관을 한 일(一)자로 먼저 세운 뒤 좌우측에 별도의 건물을 배치했다. 본관 입구에는 작은 연못을 배치했다. 이른바 한자 큰 대(大)자 구조다.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학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최고급 시설 현재까지 원형 간직

일본인 교육시설인 까닭에 학교는 최고급 시설이었다. 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급수대와 복도, 교실에는 벽난로 시설까지 갖춰졌다. 강당과 계단 등 곳곳에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건축양식이 적용됐다. 지금의 놀이터 자리엔 수영장도 있었다.수영장은 겨울철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됐다. 수영장을 제외한 대부분 시설과 구조물들이 그 때 그 모습으로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다.

비록 일본인 자녀를 위한 교육시설이었지만 건축학적으로도 의미있는 시설이다. 학교에는 일본인에 의해 작성된 연혁지도 보관돼 있다. 여기에는 당시 600분의 1로 축적해놓은 학교 평면도도 있다. 이런 연유로 교육학자와 역사학자, 건축학자들이 자주 학교를 방문한다. 그만큼 의미있는 교육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건립 100년을 바라보는 건물이지만 근대문화재로 미등록된 상태다. 비슷한 시기 개교한 인근의 서석초와 수창초 건물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돼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인이 다녔던 두 학교와 달리 중앙초는 일본인이 다닌 학교인 게 주요 배경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앙초 본관 2층에 설치된 대리석 급수대.
중앙초 교실에 있는 벽난로.

◇동문 등 반대로 통폐합 위기 넘겨

중앙초는 저출산과 도심공동화 풍파를 오랜 기간 겪고 있다. 한 때 2천명이 넘던 재학생은 현재 1~6학년 전체 32명이 전부다. 올해 1월 3일 치러진 제77회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은 학생은 4명이었다. 학생 수 감소가 지속되자 학교통폐합 대상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게 2003년 지역 미술계에서 제기됐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후보지다. 예술의 거리에 인접한 지리적 여건과 과거 미술전시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중앙초를 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의도였다. 실제 1945년 중앙초 강당에서 동·서양화 합동미술전이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1947년에는 조선미술동맹(부위원장 오지호)의 광주지부전이 개최됐다. 1949년에는 전국 최초 전국학생미술공모전이 일본대학 동창회 주최로 열리는 등 미술 활동의 중심 공간이었다. 하지만 동문들의 반대와 근대문화유산 보존 가치가 높아 원점으로 돌아갔다.

2017년에는 학교 통폐합 문제로 또다시 홍역을 치른다. 광주시교육청의 ‘적정규모 학교 운영을 위한 초·중학교 통폐합’ 추진 대상에 포함된 것. 시교육청은 초등학교 4곳(중앙초, 서석초, 삼정초, 율곡초)을 학생 수 급감에 따른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번에도 학부모와 동문들의 강한 반대로 100년 학교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중앙초는 역사만큼이나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 제77회 졸업식까지 총 3만6천530명이 졸업했다. 최근 별세한 정동년 전 5·18기념재단이사장과 배우 임현식, 이춘희 세종시장, 오기형(더불어민주당·서울 도봉을) 국회의원, 독립운동가 박세영, 임내현 전 국회의원, 여자농구 국가대표를 지낸 이미선, 야구선수 김상훈·이호준, 모델 조혜민 씨 등이 중앙초를 졸업했다. 한때 전국을 호령하던 야구부와 농구부는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중앙초 강당.
문화예술누리센터 내부 모습.

◇문화예술교육으로 미래 개척

중앙초는 변화와 도전으로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게 문화예술누리센터(누리센터) 개관이다. 예술을 누리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누리센터는 학생들이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고 예술체험을 통해 즐기고 만끽하면서 ‘내 안에 잠재된 예술 DNA’를 깨워주기 위한 곳이다. 총사업비 104억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개관한 뒤 올해 4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광주지역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생 학생들이 학교별 학급/학년 단위로 문화예술체험 수업을 한다.

디지털 역사관도 조성하고 있다. 115년간 축적된 각종 교육자료와 건물, 각종 문화유물의 노후화에 따른 훼손을 막고, 관리·보관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 중이다. 디지털 역사관은 올해 11월까지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사업이 완료되면 학교를 방문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든 중앙초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대를 걸고 있는 건 학생 수 증가다. 현재 추진 중인 광주 동구 계림 3구역 재개발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2025년부터는 학생수가 180명에 이를 전망이다. 1천400여 세대가 들어설 계림 3구역 재개발사업은 현재 조합설립이 완료된 상태로, 착공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광주중앙초에 1955년 8월 15일, 개교 10주년과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자주독립’ 기념비./임문철 기자
‘광주 1호’ 육교인 중앙육교 철거 후 조성된 쉼터./광주 동구 제공

◇자주독립 기념비·구내이발관

이외에도 중앙초는 1945년에 중앙국민학교로 개교할 즈음 생겨난 구내 이발관, 광주 최초의 육교인 ‘중앙육교’ 등 광주시민의 애환이 깃든 흔적도 다채롭다. 구내 이발관은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현재도 운영 중이다. ‘광주 1호’ 육교인 중앙육교는 1969년 4월 중앙초에 다니던 여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유서 깊은 육교다. 중앙초 앞에 위치한 중앙육교는 노후화에 따른 안전문제로 지난해 8월 철거되고, 육교가 있던 자리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기억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또 중앙초에서 간직한 유산 중에는 ‘자주독립’ 기념비를 빼놓을 수 없다. 중앙초 개교 10주년과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1955년 8월 15일 광주시민들이 세운 3m 높이의 화강암 기념비다. 이 기념비는 한민족의 기개를 알리듯 학교 본관 입구 오른편에 우뚝 서 있다.

이렇듯 중앙초는 115년을 이어오면서 우리 민족의 나라 잃은 아픔과 이를 극복하고 이겨낸 역사의 흔적이 시·공간을 초월해 학교 곳곳에 남아있다. 하나같이 교육·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

노정희 중앙초 교장은 “중앙초는 그 역사만큼이나 교육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유산이 있다”면서 “이 역사와 자산을 토대로 우리 학생들이 더 큰 꿈을 갖고 미래를 개척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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