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8 독립만세운동 통해 애국심 고취
일제 신사참배 강요 항거·학교 자진 폐교 선택
1983년 교무실 수리 중 독립운동 자료 쏟아져
14명의 독립유공자 배출…매년 독립운동 재현
영어 등 언어교육 집중·미래 글로벌 인재 양성

 

오랜역사를 간직한 정명여자중고등학교가 넓은 학교 운동장을 배경으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정명여자중고등학교 제공

한없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양한 눈요깃꺼리들이 어지러이 나뒹군다. 새, 구름, 건물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경계도 없고, 정의도 없다.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느껴진다. 지금 보는 모든것들이 언젠가 시간의 흐름속에 사라질까하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오랜것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도 이 탓일 터이다.

전남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전남도 목포시 삼일로 45)가 119년동안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감사한 것은 어찌보면 이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달래주는 존재인 까닭이다. 광주·전남 1호 여성학교란 기본 가치를 뛰어넘어 긴 세월만큼 쌓아올린 역사이자 추억의 산물로서 본분을 지키고 있는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지난 1914년 목포정명여학교 제 1회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현재 학교 내 100년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태생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는 지난 1903년 9월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에서 목포여학교란 학교명으로 배유지 목사에 의해 최초 설립됐다. 초대 학교장으로 남장로교 여선교사였던 스트레퍼(Straeffer,F.E.)씨가 맡았다.

당시 한국을 방문하는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터를 잡은 지역에 교회, 학교, 병원 등 소위 트라이앵글 구도로 건물을 지었다. 영혼 구제(교회), 육신 치유(병원), 문명의 삶 변화(학교) 등 종교적 교리에 따라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이는 근대화라는 시대적 산물과 맞물리면서 한반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주변에도 지역 1호 교회였던 양동교회, 현재는 사라진 프렌치 병원(전남의 최초 서양의사인 오웬 선교사 개원) 등이 함께 위치해 있었다.

이처럼 학교설립 후 모든 기틀이 마련되고 1911년 3월 학교명을 정명여학교로 개칭 , 졸업생 4명을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의 긴 역사의 첫 페이지가 열렸다. 이후 2022년 2월 현재까지 총 졸업생 4만2천793명을 양성하는 등 지역 최고 명문 학교로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

1983년 당시 학교 교무실 천장을 수리하던 중 일제시대 학생들이 항일 운동을 하던 중 감춰 둔 많은 독립운동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항일의식 투철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 역행, 여성 인권 신장은 물론 여성에 대한 교육 및 역사의식 고취 등에 집중했다. 이는 여성이란 이유로 무작정 강요됐던 사회적 역할 한계를 뛰어넘어 평등한 존재로서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귀결됐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는 당시 일제침탈로 고통받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애국정신으로 재탄생됐다.

지난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이 뜻을 이어받아 학교 전교생이 참여한 항일운동인 4·8 독립만세운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학생들은 같은 해 3월부터 거사 준비를 위해 기숙사와 지하실에서 교사였던 강석봉의 태극기를 목판에 새기고 찍어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후 4월 8일 오전 2교시 수업이 끝나고 종소리를 시작으로 학생들은 정문을 벗어나 프렌치 병원 앞을 지나가며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시위로 모두 80여명이 체포돼 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이 중 절반인 약 40여명이 정명 여학생들이었다.

이러한 항일 정신은 2년 후인 1921년 정명학생 만세시위로 이어졌다. 당시 11월 13일 오후 학생이었던 천귀례씨가 동아일보를 구독하던 중 미국 워싱턴에서 여러나라의 평화를 위해 전 세계 관계자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접한다. 특히 조선 대표단도 파견된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조선 독립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도록 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된다. 이후 박음전, 주유금, 김옥실, 이다혜 등 친구들과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남교동 방면으로 행진했다. 이날 만세운동엔 교사들도 함께 참여하며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곧 출동한 일본 순사들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지난 1929년 학생독립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이후에도 학생들의 일제 저항 의식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급기야 1937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극심해지자 이를 거부, 자발적 학교 폐교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10년만인 1947년 목포정명여자중학교로 복교(재개교)되기 전까지 학교 운영이 잠정 중단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세상밖으로 드러난 것은 수십년이 지난 1983년 2월 진행된 우연한 공사 때문이었다.

당시 정명여자중학교에서 사용중인 교무실이 너무 낡고 오래돼 보수공사를 진행했는데 천장 개보수 작업 중 ‘2·8선언서 원본’, ‘3·1운동서 사본’, 警告我二千萬同胞 (경고아이천만동포) 라 쓰인 격문, 朝鮮獨立 光州新聞(조선독립광주신문), 만세 시위도중 널리 불렸던 ‘독립가 사본’ 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 전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정명여학생들의 항의운동 역사가 여러 문서로서 입증된 순간이었다.

현재 이곳은 당시 목포정명여자중학교 특별동이란 이름과 함께 전남교육문화유산 제 5호로 지정·관리 중이다.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출신 독립유공자는 총 14명에 달한다. 이러한 애국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2022년 현재도 후배들이 매년 독립만세 재현행사를 진행, 목숨받쳐 나라를 지켜낸 선배들을 기리고 있다.

선교사 사택으로 사용됐던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전경. 당시 유달산에서 채취한 응회암을 가공, 정사각형 모양의 모더니즘 건축기법으로 지어져 멋스러움을 자랑하고 있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석조관. 현재 100년기념관으로 활용중인 선교사 사택과 같은 바른 층 쌓기로 건축됐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뛰어난 석조건물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당시엔 보기 드문 모더니즘 석조건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우선 ‘목포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절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붉은 벽돌이 아닌 응회암으로 지어졌다.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응회암이 목포 대표 명산인 유달산에서 채취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시절 선교사들은 응회암을 장방형(내각이 모드 직각인 사각형 모양)형태로 가공해 바른층(수평줄눈이 일직선이 되게 쌓는 돌쌓기 의 한 방식)쌓기 방식을 적용, 건물을 올렸다. 사각 형태를 이루다보니 좌우대칭미가 특히 독보인다.

1990년까지 교장 사택으로 이용되다가 현재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100주년 기념관과 음악실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지역에 남아 있는 목포의 석조 건물 중 건립 연도가 가장 빨라 목포 근대건축자료로서 가치도 크다.

이밖에도 학교 내 앞서 언급한 목포정명여자중학교 특별동과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석조관(전남교육문화유산 제 14호) 등 총 2곳이 이와 유사한 방식의 석조건물로 조성돼 있다.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가 100여년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 인재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미래 인재 육성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미래를 선도하는 인재 육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언어교육에 집중, 세계를 무대로 미래를 선도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데 헌신 중이다.

이를 위해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교육 커리큘럼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전남 지역 학교로선 드물게 인도 파라곤 스쿨 등 해외 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는 등 실질적 교육에 나서고 있다. 재학중인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 착안, 호주 한 학교 선생님 및 학생들과 화상으로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눠보는 원격수업도 실시했다. 코로나 시기를 극복한 효율적인 교육 방식이다.

향후 동남아 몇몇 국가 학교들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학생들의 언어능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또 학생들의 영어 및 수학 과목 학습능력 수준에 따라 반을 편성, 학생들의 성취도를 높이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고철수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교장은 “100여년전 우리 학교 학생들에 의해 목포 전역에 조국 독립을 부르짖는 함성이 확산됐었다”며 “현재도 학교 곳곳에 이들의 애국정신이 오롯이 담긴 장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훌륭한 인재를 계속해서 배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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