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영란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중국 역사에서 동서양의 융합적이면서도 국제적인 화려한 문화를 이야기한다면 당(唐) 왕조의 문화일 것이다, 당 왕조 문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장안의 봄’이라는 책을 읽으면 당시 당의 수도 장안(현재 서안)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 알 수 있다. 호선무, 호희, 온천과 포도주 등 다양한 이색문화를 보여주면서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진 장안을 상상하게 한다. 이처럼 번창한 당 왕조였지만, 그 왕조 역시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니 왕조가 기울어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당의 절도사에게 빌미를 만들어 당 왕조를 쇠퇴하게 한 여인이 있으니 양옥환, 일명 양귀비(楊貴妃)이다.

당 현종(玄宗)의 총애를 받았던 양옥환은 그토록 번창한 당 왕조를 기울게 한 여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양옥환을 양귀비라 하는데, 그 여인이 귀비라는 후궁이 되었기 때문에 양귀비라 부르는 것이다. 또 양귀비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에 꽃도 스스로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는 ‘옥환수화’라는 별칭이 있으니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중국 4대 미녀 중 한 여인이다,

오래전에 서안(西安) 여행에서 양옥환이 주인공인 ‘장한가(長恨歌)’라는 중국 오페라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당대의 문호 백거이가 지은 ‘장한가’를 장예모 감독이 재현한 중국식 오페라 뮤지컬이다. 화청지를 무대로 한 수중 공연은 뒤편 여산(驪山)이 배경이 되어 거대하고 화려한 조명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양옥환이 당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말이다.

‘장한가’의 무대인 화청지(華淸池)는 43도의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라 이미 주나라 때부터 유명하나, 당 현종이 양옥환을 위해 해당탕(海棠湯)을 지어주면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한가의 한 대목에 “아름다운 3,000명의 후궁에게 쏠렸던 총애가 이제 한 몸에 있네”라고 하였으니, 양옥환을 향한 당 현종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양옥환을 사랑한 당 현종은 집권 초기에는 현명한 황제로 왕 스스로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치 풍조를 금지하였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개원의치(開元의 治)’(712~741, 29년간)라 하여 당 태종의 전성기인 정관의 치 이후 최대의 성시로 꼽는다. 호가 760만, 정관 시대보다 2배 이상으로 안정된 사회였다. 당 현종은 개원의치를 이룩할 정도로 어질고 검소한 황제였지만, 며느리인 양옥환을 후궁 귀비로 올린 후,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양옥환의 비위를 맞추는 어리석은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그때 현종 나이 61세, 양옥환은 27세였다.(745년) 그토록 번창하였던 당이었지만 결국 절도사 안녹산과 사사명이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였고 당 왕조는 서서히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왕조의 번창과 쇠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다양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리더의 자질이다. 리더의 자질이 어떠한가에 따라 번창하기도 쇠퇴하기도 할 만큼 한 국가의 리더는 중요하다. 리더는 참으로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하고, 그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정치에 임해야 하는가에 대해 모든 정치 리더들은 고민해야 한다.

“못된 지도자는 백성들이 경멸하는 사람이요. 뛰어난 지도자는 백성들이 존경하는 사람이요, 위대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처럼 진정한 리더라면 어떤 리더인가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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