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경기도 광주 야산의 땅에 새 주택지를 조성했다. 여기에 서울 도심의 판자촌 사는 사람들을 쏟아넣었다. 하꼬방 사람들은 허허벌판에 텐트를 치고 살거나 루삥집들을 다시 지었다. 서울 도심의 눈살 사나운 사람들을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 쑤셔박아버린 것이다.

서울의 판자촌과 다를 바 없는 또다른 판자촌 생활. 서울은 그래도 수도 전기가 들어왔지만, 이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사용하고, 상하수도 시설이 설치되지 않아서 물은 산골짜기 아랫동네 우물에서 져날라 사용했지만, 하수도에는 생활하수는 물론 똥오줌까지 흘러가는 환경 오염 지대가 되었다. 교통 사정 또한 취약해서 주로 아침 일찍 서울로 나가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출퇴근이 대단히 불편했다. 희망을 품고 찾아든 철거민은 또다른 절망을 맛보고 있었다.

그것과 상관없이 김인자는 금호동 판자촌 생활에 희망을 걸었다. 철거대책이 세워졌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어느날 그녀는 김구택을 불러세워 말했다.

“내일 당장 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우린 할 일 합시다. 내가 아이들 여섯을 모았어요. 오후 4시에 김구택씨 집으로 갈 것이구요. 그때 김구택 씨는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김구택 선생님은 애들에게 영어공부부터 가르쳐요. 악, 소리나게 영어교육으로 분위기 잡아나가요. 요즘 시대는 선행시대니까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애들에게 중1 영어 선행학습을 시켜요. 판자촌 동네가 왕창 뒤집어질 거예요. 신나는 일 아닌가요?”

김구택은 졸지에 선생님이 되었다. 김인자 앞에서 그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김인자는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준비도 안되었는디…”

“그래서 내가 청계천 헌 책방에서 고광만의 스탠다드 중1 영어책을 열권 구해왔어요. 조기 영어교육을 시켜서 잘사는 동네 아이들을 납작하게 해버려요.”

그러나 그는 상투적인 중1 영어 교과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I am a boy, You are a girl, I am a school boy 따위 빤한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 획일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영어공부라면 당장 시처에 나가 써먹을 것으로 해야 한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영어라야 산 교육이 된다고 그는 믿었다.

“비일상적인 학교 영어는 가르치고 싶지 않소.”

“그럼 어떤 영어예요?”

“예를 들어서 People in my town(우리 동네 사람들), Mr. OhSonggong lives near the park(오성공군은 공원 근처에 산다), Miss Inja lives next door(인자씨는 옆집에 산다), She gets up early to cooks(그녀는 밥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My town is cooks, teachers, doctors, bus drivers, and so on(우리 동네엔 요리사, 선생, 의사, 버스 운전사 등이 있다), 이런 생활영어를 가르치고 싶소.”

“그것이 입시에 도움이 되나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요.”

“쓸데없는 생각 말아요. 입시에 도움이 되는 영어를 가르쳐요. 아이들을 일류 중학교, 일류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이 목적이에요. 금호동 판자촌에서 경기중고를 나오고, 서울대학 나왔다고 하면 개천에서 용나는 것 아녜요? 그러면 성공 신화가 나오는 거죠. 우리 성공씨의 이름이 되는 거죠. 그러니 헛소리 말고 당장 경기중학 영어교과목으로 선행교육시켜요.”

“경기중학은 없어졌잖아요.”

“그런 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을 기르란 말이에요. 뭘 알아먹는 사람이 왜 그리 빡빡하고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해요?”

그는 말문이 막혔다.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김인자가 다시 말했다.

“그럼 틈틈이 공부해요. 금호동에 고교 과정의 야간학교가 있으니, 거기에 적을 두도록 해요. 고등학교 자격증이 주어지고, 대학 진학할 자격이 주어져요.”

“나는 검정고시로 할 거요.”

“검정고시건, 야간학교 졸업장이건, 무엇이든 시도해봐요. 젊은 사람이 야망이 있어야죠. 나도 여공생활 틈틈이 공부해서 대학 진학할 거예요. 우리 성공씨도 기어이 대학 졸업장 받도록 할 거예요.”

어린 학생들이 김구택의 하꼬방으로 몰려들었다. 공짜나 다름없다고 하니 가난한 아이들이 찾아왔고, 호기심 삼아 온 아이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아이를 업은 소녀도 있었다. 열댓 살쯤 되어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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