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택은 소녀에게 눈이 갔다. 조금만 슬픈 일을 당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커다란 눈을 가진 소녀였다. 호기심이 많은 듯 그녀는 하꼬방 실내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김구택을 살피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기를 업은 소녀가 이곳을 찾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뭔가 기대와 희망을 갖고 찾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공부하고 싶은가?”

김구택이 묻자 소녀가 수줍게 대답했다.

“네.”

“그럼 아이를 놓아두고 와야지.”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부모님이 일을 나가셔서?”

“네.”

“아버지는 뭐하시는가.”

물어보나마나 노동 일이나 하겠지, 하는데 소녀는 다르게 대답했다.

“안계셔요. 엄마만 계셔요.”

“돌아가셨나?”

“아니오, 원래 없어요.”

“원래 없다니…”

그녀는 대답없이 침묵을 지켰다. 무슨 사연이 많은 아이 같았다.

“그럼 아이를 업고 공부방에 올 것인가?”

“네.”

“이름은?”

“서애님이예요.”

“애님이는 나이가 들어보이는데 그래도 초등학교 공부할 것인가?”

“중학교를 못들어갔으니까 중학교 공부를 하고 싶어요. 학교 다니는 아이들 보면 슬퍼져요.”

김구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아이들은 사연없는 아이들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진정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리라 마음 먹었다. 한때 길을 잘못 들어 거리를 방황하고, 뒷골목 세계에 빠져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일을 예비하기 위해 헤맸던 것 같다. 열악한 환경에서 왜 불행한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에게는 어떤 향학열을 충족시키기보다 근원적으로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애정이 결핍된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두달 째 아이들을 영수(英數)를 가르치다 보니 그대로 표시가 났다. 금호초등학교, 옥수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성적이 금방 상위권에 오르고, 인근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는 중학생반 아이들도 우등생 반열에 올랐다. 소문이 나자 행상을 하다 남은 과일을 가져오는 사람, 붕어빵 봉지를 가져오는 사람, 공책과 연필을 사서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날 허술한 행색의 중년 사내가 한 아이를 데리고 김구택을 찾아왔다. 경상도 말씨로 그가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선생님예, 말씸 많이 들었십니데이. 소문이 자자하데예. 그래서 내 아이를 데리고 왔십니더. 이 아이 좀 맡가도 되갔십니꺼?”

아이는 심히 뽀루뚱한 표정이었다. 끌려오긴 했으나 달갑지 않다는 투였다.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초등학교라도 제대로 댕겨야 하는디 매번 쫓가나지 않십니꺼. 나이는 중학생 나인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다녔십니더. 학교에선 자꾸 쫓가낸다 아입니꺼. 그래서 구구단도 못외웁니더.”

“쫓아내다니요.”

“요노마가 손버릇이 좋지 않다 않십니꺼. 뭘 훔치고, 아이들을 때리고, 보통 장난이 아입니더. 요즘 말로 하면 문제아입니더.”

“아이 앞에서 함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구택이 정중히 꾸짖었다.

“하모 이것이 인간이 안될 것 같으니깨네 그러는 것 아입니꺼. 집에 홀로 두고 공사판에 나댕기는디, 요노마 새끼가 학교는 안가고 상점에서 닥치는대로 뭘 훔치고, 학교 가서도 사고만 친다 아입니꺼. 여자애들 팬티도 벗기고 장난 아입니더. 지 애미처럼 풍기문란이 보통이 아입니더. 이래 싸면 내사 요노마 새끼를 패죽이고 말 깁니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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