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석(목포과학대학교 교수)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인터넷에 기초한 스마트폰 혁명으로 말미암아 정보유통은 빛의 속도가 무색할 만큼 빨라졌고, 그 유통범위는 무한해졌다.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댓글을 달아 자기의 분노와 불만을 드러내기가 쉬워졌다.

혐오(嫌惡), 짧게는 삼사 년 전부터 유행하는 말이다. 우리사회 문제가 어떤 심리적 정서로 표출되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단순히 보면, 각자의 분노, 집단의 불만이 자기에 대한 성찰이나 자기정정(self-correction)의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우선 누군가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가수 이장희, 그건 너, 1973), 1970년대 초반에 유행한 노랫말이다. 박정희 유신통치 시절이라, ‘너’는 아마도 국가권력이었으리라. 반세기 동안 수많은 희생을 통한 민주화가 미완이나마 어느 정도 이뤄진 오늘날 투사의 대상은 국가권력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으로 바뀌었다. 그런 투사의 방식이 오늘날엔 혐오로 구체화했다.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다. 보통 사람이 드러내는 정서(affect)의 하나다. 정서는 뭔가에 영향을 받아 순간적으로 불러일으켜진 마음 상태다. 공포 영화는 부정 정서를 일으킨다. 내 처지를 곤란하게 하거나 경제적 피해를 준 사람을 만나면 부정 정서가 일어난다. 그 심한 부정 정서는 혐오로 불릴 만하다.

중국의 혐한 정서가 일어난 계기는 2016년 7월 한국과 미국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를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한다는 결정이다. 부인하기 어렵다. 이에 중국 정부는 ‘한한령’(限韓令)으로 대응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인의 혐중 정서도 물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봄 직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반한보다는 혐한이, 반중보다는 혐중이 더 자주 보인다. 반면에, 반일은 보여도 혐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미는 보여도 혐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혐오정서로 보건대, 우리나라에 대한 미·중·일 3국의 영향은 중국이 더 커 보인다.

어떤 나라를 S라 하면, 그 나라에 대한 반감은 반S(Anti-S)로, 그 나라의 여러 가지를 혐오하거나 이에 공감하는 정서는 혐S(Hate-S)로 표시하자. 반S는 정치적, 역사적인 견해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어떤 나라에 대한 반감이다. 혐S는 어떤 나라의 정부와 국민을 포함하고 그 외 넓은 범위의 요소까지 무조건 혐오하는 정서다. 이를 적용하면, 여혐과 남혐은 각각 여자와 남자의 여러 요소를 무조건 혐오하는 정서다.

지난 23일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개원 25주년 기념 호남권 심포지엄이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 2층에서 열렸다. 심포지엄 장소로 가기 전, 그 센터 1층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선생의 흉상 앞에서 머리 숙여 잠시 묵념했다. 추모공간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조그만 사진에서 보이는 글자는 ‘事人如天 / 2005年 9月 26日 /金大中 / 李姬鎬’이다. 사자성어 ‘사인여천’을 보니, 김대중 선생과 그 부인 이희호 선생이 사람을, 국민을 하느님 섬기듯이 섬기면서 겪으신 수많은 고통과 수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마침 18일이 김대중 대통령 서거 13주년인지라, 추모하는 마음은 더 간절했다.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은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라)’이라는 실천 방법을 정립하였다(김삼웅, ‘사인여천’에 나타난 인권사상, 오마이뉴스, 2021.7.13.).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거의 모든 연설을 시작했다. 야당 지도자 시절, 그분은 집의 거실에 ‘敬天愛人’(경천애인·하느님 공경, 이웃 사랑)을 쓴 액자를 걸어 놨다(<삼김시대> 23회, SBS 드라마, 1998). 요컨대, 그분은 경천애인과 사인여천을 실천하신 분이다. 그분이 재임한 기간(1998.2~2003.2)에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어떤 누구, 집단, 나라에 대한 혐오 정서는 드러나지 않았었다. 여혐(여성 혐오), 남혐(남성 혐오) 등의 용어는 없었다.

정치는 공학이 아니고 소나 양을 치듯이 정의를 확장하는 일인데도, 주요 정치지도자는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기는커녕 오히려 정치 공학적 필요를 쫓아 혐오정서를 조장하여 국민을 갈라치기 해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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