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최고위원 도전 3번 연속 ‘고배’
존재감 드러내는 현역 無…한계 직면
‘기대→실망→무관심’ 민심이반 심각
쇄신·반성 필요…달라진 환경 직시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신임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 박찬대, 고민정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정청래, 서영교 최고위원. 이날 호남 출신 송갑석 후보는 6위로 고배를 마셨다. /국회사진기자단

호남 정치가 벼랑 끝에 서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본산’이자 역사의 변곡점마다 한국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왔던 호남이 이제는 변방 중의 변방으로 밀려날 상황에 처했다. 지역 차별, 지방의 설움으로 단단해진 호남은 선거 때마다 ‘방향계’를 자처하며 무게감 있는 정치인을 배출했고 정치 1번지의 면모를 보여줬다.

하지만 현재 광주·전남의 상황은 다르다. 관록과 존재감을 과시하는 현역은 전무한 데다 호남이 키운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 배출마저 연이어 실패했다. 호남은 이제 ‘회초리’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이란 경고를 보내고 있다.

호남정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본보는 호남정치 현실을 진단하고 그 원인을 짚어본다.

◇말로만 ‘텃밭’…연이은 지도부 ‘고배’=‘어대명’을 입증하며 이재명 대표의 압승으로 마감한 8·28민주당 전당대회는 호남정치에 크나큰 ‘충격’을 안겨줬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비수도권 유일 주자이자, 호남 단일후보로 출마한 송갑석 의원의 낙마는 무기력에 빠진 호남정치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이다. 성적은 7명 중 6위. 최종 득표율 10.81%로 5위까지 주어진 최고위원 입성에 실패했다.

전체 권리당원의 30% 가량을 보유한 호남이 5명을 뽑는 선출직 최고위원을 배출하지 못하면서 그 자리를 수도권 후보가 채우게 됐다.

제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치러진 민주당 전대 최고위원 선거에서 전북의 한병도 의원(11.14%)과 전남의 서삼석 의원(11.11%)에 이어 이번 3번째 도전에서마저 고배를 마시며 체면을 구겼다.

특히 호남 출신 세 후보 모두 불과 1%p 안팎 차이로 좌절하면서 호남 정치의 한계를 보였다. 한 후보는 당시 5위였던 양향자 후보와 0.39%p 차이를, 서 후보는 전혜숙 후보와 1.21%p, 송 후보는 장경태 후보와 1.58%p 차이였다.

물론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20년 8월 전대에서 당 대표에 오르고 양향자 의원이 순위권에 들지 않아도 최고위원이 확정된 상태에서 자력으로 5위권 안에 들었던 점은 위안이 되지만 사실상 호남 대표 선수로 뛴 최고위원 후보들의 낙마는 뼈아픈 대목이다.

◇대선 패배·지역 정치권 실망…등 돌린 민심=호남 정치력이 이처럼 하락 곡선을 그리는 건 지역민의 정치 실망감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전남 출신인 이낙연 전 당 대표가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고배를 마시자 지역민들의 아쉬움은 컸다. 그럼에도 호남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이재명 후보에게 80%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보냈으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공천 출혈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인식 속에 각종 잡음이 양산된 민주당의 광주·전남 공천 과정을 지켜본 지역민들은 실망감과 함께 ‘오만한 민주당’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민심 이반은 역대급 낮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6·1지방선거 당시 광주 투표율은 전국 최저치인 37.7%를 기록하며 호남 정치에 무언의 야유를 보냈다. 민주당 전당대회 역시 외면했다.

이번 전당대회 권리당원 투표율은 광주 34.18%, 전남 37.52%, 전북 34.07%로 호남 평균 35.49%로 집계됐다. 이는 전국 권리당원 평균 투표율 37.09%에 못 미치는 수치다.

기성 호남정치의 무능함에 분노의 목소리를 내며 회초리를 때리기 보다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응한 것이다.

◇다선 전무·존재감 ‘제로’=정치적 관심도가 타 지역보다 높은 호남의 외면은 근본적으로 DJ의 호남정신과 리더십을 이을 차세대 정치인이 없다는 무력감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20 총선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천정배·박주선·장병완·박지원 전 의원 등 중량감 있는 다선 정치인이 중앙 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대선 도전으로 이어지기까진 한계에 부딪혔지만 지역 목소리를 전달하고 여의도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진 의원들은 2016 총선 당시 분 ‘안풍’으로 민주당을 떠나 새 정치를 외쳤지만 정작 정치적 이익에 따른 선택에 불구했단 비판도 직면했다. 다선이 가진 경륜보다 낡은 정치란 이미지에 휩싸였고 호남은 실망했으며 새인물을 갈구했다.

2020 총선에서 민주당은 호남에서 다시 예전의 지지세를 회복하며 시의원, 구청장, 운동권 출신 등 지역 풀뿌리 정치인들을 대거 공천했다.

이들은 ‘호남정신을 되살리겠다’, ‘호남정치를 복원하겠다’는 당찬 포부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존재감은 전무하다. ‘다선’ 정치인의 영향력이 상당한 여의도 정치 특성상 초선이 다수인 지역 정치력의 한계는 인정하지만 역량 부족과 지역민과의 소통이 부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지역 정치인에 대한 애정은 고사하고 지역구 국회의원, 지역 출신 정치인 이름조차 시·도민이 알지 못하는 등 기성 호남 정치인의 무존재감이 느껴진다. 지역 정치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끄러운 민낯이다.

중앙정치력 약화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집권당이 되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민주당 소속 광주·전남 의원들은 국회 예산 전쟁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다수가 초선인 탓에 인지도와 정치력이 아직까지 미미하고 상임위원장 자리를 맡은 의원도 단 한명도 없다는 점도 중앙정치에서 예산 확보 등 힘을 발휘하기 난망한 구조다.

여기에다 민주당 내 호남 목소리를 전달할 유일한 창구로 여겨지는 선출직 최고위원 입성 실패로 정치 자생력을 잃는 한계에 부딪혔다.

◇호남 없는 민주…지역정치 미래 ‘어디로’=호남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탄식과 한숨 속에 민주당의 뿌리이기도 한 ‘호남정치’ 미래를 위해 뼈를 깎는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명진 더연정치랩 대표는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내로남불이었다. 정권을 빼앗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며 “민주당이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방선거 공천 과정 등에서 보여준 내로남불에 대해 지역 정치권의 반성과 혁신 없이는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며 “ 민주당 안의 내로남불의 싹을 말끔히 잘라내고 더 절제하고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지역정치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일부 정치권이 위기론을 고조시키기 보다는 이제는 호남이 민주당의 중심이 아닌, 이른바 정치환경 변화와 균질적 당원이 형성된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진성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지리적 단절이 지역마다 있었고 지리적 경계에 따른 다른 사고방식,가치관 경제활동이 분절돼 있었다”며 “하지만 교통수단, 통신 환경이 발달하면서 현재는 예전과 다르게 수도권 쏠림 현상이 있고 지방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식 정치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히 민주당이 호남 기반으로 한 정당이고 출향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고 호남의 의견이 수도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관계가 역전됐다고 본다”며 “유튜브, 종편 등을 통해 동질적 의견집단이 형성되고 있다. 수도권 민주당 당원 의견이 다르고 호남 민주당 당원 의견이 다른 형태는 아닌거 같다”고 진단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호남 국회의원이 정작 최고위원에 출마했지만 호남 당원에게 큰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남에 갇혀 있는 현역들에게 일침도 가했다.

공 교수는 “의원들도 수도권에 남아서 전국적 의제를 던지거나 이슈 파이팅을 하기 보다는 주말마다 내려와 당원 관리에 신경쓸 수 밖에 없다”며 “인터넷 매체로 해서 동질적 성향을 가진 당원들이 이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지역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치인을 바라지만 현실은 그런 정치인이 중앙에서 존재감을 뽐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 교수는 “동질적 당원 집단이 다수 분포해 있고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실을 인정하고 진단해야 한다”며 “(의원들은)지역 이익단체와 이해관계에 벗어나 전국적 의제 등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현 위민연구원장은 “이번 최고위원 선거 결과를 보면 더이상 호남 표만 의식하고 호남팔이 해서는 안된다는 게 드러났다”며 “의원들이 자생력을 키워야 하는데 지역에 매몰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처럼 의원들이 각자도생하면 호남정치 발전은 힘들다”며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없는 것도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지금이라도 현역 의원들이 호남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똘똘 뭉쳐 지역현안 해결에 나서고 국가적 아젠다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영 기자 j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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