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 풍파 이겨내며 지역·국가발전 인재 양성
유림·선각자 ‘교육입국’ 충정
1908년 육영보통학교로 개교
1911년 첫 졸업생 10명 배출
13회 졸업생까지 모두 남학생

독립지사 정광호 교사로 근무
정율성도 재학 음악가 꿈 키워
‘역사관’에 졸업생 이름·사진
“동문·지역사회 협력 변화 선도”

능주초등학교는 2008년에 ‘100년 학교’에 이름 올렸다. 1908년 개교했으니 올해로 11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능주초는 공식기록상 전남 화순에서 처음 개교한 근대식 학교다. 동복초교 동문들 사이에서 동복초가 능주초교보다 1년 앞서 개교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공식기록으로 증명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능주초교가 화순에서는 가장 오래된 학교로 인정받는다.

교 114년1908년 10월 1일 개교한 능주초등학교는 화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다. 학교 본관 앞의 수령 150년이 넘는 히말라야시다 나무는 능주초의 114년 애환과 기쁨, 희망을 함께 한 상징이다. 화순/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현 능주농협 본점이 출발지

능주초는 구한말 개교한 학교들처럼 ‘교육을 통한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우국충정에서 출발했다. 오랫동안 유학을 숭상하며 학문과 교육의 도장으로서 능주 향교를 중심으로 사숙을 운영하던 유림들과 국운의 암울함을 자각한 선각자들의 요구와 신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태동했다.

1908년 10월 1일 능주 군수 민상현씨 발의로 주찬우, 조형택 등의 협의 아래 지금의 능주농협 본점 자리에 능주육영 보통학교로 문을 열었다. 재정 관계로 폐교의 위기에 처하자 민상현 등 수명의 노력으로 재정 문제를 해소하고 1910년 2월 26일 칙령 제44호 보통학교령에 의해 능주사립보통학교로 설치 인가됐다. 이후 능주군 주내면 광동 학교를 설립 운영해 오다가 1911년 6월 22일 수업연한 4년제 능주공립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1923년 3월 20일 수업연한 6년으로 연장돼 능주군 궐비 보안소 및 객사에 자리 잡고 학교를 경영하다가 1938년 6월 6일능주면 잠정리에 교사를 신축·이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1941년 능주공립국민학교로, 1950년 4월 1일 능주국민학교로, 1996년 3월 1일 능주초등학교로 개칭됐다.

능주초등학교 첫 출발지였던 현 능주농협 본점.
능조초등학교 전신인 능주공립보통학교의 1920년 모습. 능주 객사에서 임시 운영됐다. /전남도 제공

▶초기 졸업생 중 여학생 ‘0’

능주초는 1911년 3월에 제1회 졸업생를 배출한다. 4년제 교육과정의 첫 졸업생 수는 10명으로, 모두 남학생이었다.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인색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여준다.

6년제 첫 졸업생은 2년 뒤인 1913년에 나온다. 졸업생 수는 7명으로 이 역시 모두 남학생이었다.

남학생만 다니는 학교는 13회 졸업생까지 이어진다. 1회부터 13회까지 졸업생 193명 중 여학생은 한 명도 없다. 처음 여학생 졸업생이 나온 해는 1926년으로 14회 졸업생 64명 중 여학생이 10명 포함됐다.

통상 50명 내외이던 졸업생의 수는 1930년대 초부터 입학생이 늘면서 1941년 28회 졸업식 때는 106명이 졸업하면서 처음으로 1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1983년에는 213명의 학생이 졸업하는, 학생수가 1천200명을 넘는 큰 학교였다.

하지만 농촌 인구 감소와 저출산 영향 등으로 1993년 2월에 졸업한 80회 졸업생 103명을 끝으로 81회 졸업생부터는 졸업생의 수가 꾸준히 줄어들어 95회 졸업생의 수는 36명에 불과했다. 올해 1월 5일 열린 109회 졸업식에선 14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총 졸업생은 9천22명이다.

100주년 역사관에 기록돼 있는 1회~95회 졸업생 명단.

▶109회 졸업식 9천여 명 인재 배출

114년의 역사가 말하듯 능주초는 한일 강제합병, 독립운동, 해방, 건국, 여·순사건, 6·25동란, 5·18민주화운동 등 우리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9천여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계에서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의 큰 축을 이뤘다.

능주초총동문회가 2008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발간한 ‘능주초 100년사’의 자랑스런 동문에는 민주화의 큰 거목인 홍남순(17회) 변호사, 주기노(32회) 창원산업㈜ 대표, 장홍섭(34회) 능주초 교장, 주창준(37회) 화순군의회 의장, 정남기(41회) 육군소장, 손형섭(43회) 목포대 교수, 오수복(48회) 전남경찰청 차장(치안감), 김영룡(50회) 국방부 차관, 조정숙(50회) 함평고 이사장, 권대승(54회) 전문의, 문팔갑(54회) 화순군의회 의장, 조병오(55회) 육군소장, 이강일(63회) 대진대 교수 등의 이름이 올랐다.

 

 

정율성 기념비.

 

▶광주 3·1운동 주역 정광호

능주초 졸업생은 아니지만 독립지사 정광호(1895~1956)와 음악가 정율성(1914~1976)은 능주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천 큰 장터와 작은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광주 3·1운동의 출발은 도쿄에서 유학생이 가져온 2·8독립선언서와 맞닿아 있다. 그 선언서를 가지고 들어와 장성에서 인쇄한 후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이 바로 정광호다.

화순군 능주면 내리에서 태어난 정광호는 광주로 이사한 후 광주공립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보 부설 임시교원양성소에 입학한다. 양성소를 졸업한 후 그는 고향에 설립된 능주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지만, ‘독립찬가’ 등의 노래를 가르치는 등 학생들의 배일사상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1916년 해임된다.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임시정부 교통국 참사, 국민대표회의 전라도 대표 등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광주시장으로, 광주를 대표하는 제헌의원이 되어 반민특위를 구성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은 한동안 잊혀졌고, 1989년 3·1절 80년을 맞아 다시 명예를 되찾는다.

 

 

정율성 교실.

 

▶정율성 흉상·정율성 교실

정율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혁명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능주초교에 보관된 화순능주소학교 제적부에는 1922년(대정11년)에 입학해 이듬해인 1923년 4월 광주로 전학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능주초에서 1년간 공부한 것이다.

입학 당시 학적부에 적힌 정율성의 본명은 정부은(鄭富恩)이었다. 어린 정율성은 능주초 부근에 있었던 신청(神聽·관기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관청)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음악성을 길렀다고 한다.

그는 광주숭일보통학교를 마치고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과 상하이 등지를 전전하는 동안 작곡과 성악을 배웠다. 1939년 발표한 ‘팔로군 행진곡’은 1949년 중국 건국과 함께 ‘인민해방군가’로 불려 오다가 1988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정식 군가로 비준을 받았다.

이런 정율성이 능주초 출신임을 기념하기 위해 학교 후문쪽에 흉상이 세워졌다. 학교 역사관 옆 공간에 ‘정율성 교실’을 만들어 그의 생애와 업적 등을 기리고 있다.

역사관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곳으로 능주초의 역사와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교실 2칸을 리모델링해 만든 역사관에는 능주초 1회부터 지난 2월 졸업식을 가진 95회 졸업생까지 8천718명의 얼굴이 담긴 졸업사진과 이름이 각 기수별로 빼꼭하게 기록돼 있다.

학교에서 사용했던 각종 표지석과 낡은 풍금, 라디오, 대형 주판 등의 교구들도 전시됐다.

 

100주년 역사관 내부 모습.
능주초등학교 백주년 기념비.

▶새로운 100년 향해 매진

능주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 미래를 열어갈 인재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입학생이 8명이 전부일 정도로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지만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며 꿈을 키워가는 행복한 사람’을 교육 목표로 ▲여러 사람에게 좋은 사람 ▲기본을 다져 슬기로운 사람 ▲특기를 살려 재능있는 사람 ▲몸과 마음이 튼튼한 사람 등 4가지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교목은 히말라야시다다. 본관 앞 양 편에 한 그루씩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는 수령 150년은 족히 넘을 만큼 웅장함을 자랑한다. 능주초의 114년 애환과 기쁨, 희망을 함께 한 상징이다.

능주초총동문회(회장 김종선)도 모교 발전과 인재양성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점점 줄어가는 학생 수와 잊혀져가는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안타까워하던 총동문회는 장학회를 설립하고 재학생들을 상대로 장학사업을 전개 중이다. 지난 5월에는 재학생 전원에 스포츠의류 단체복을 기증하며 격려했다.

조정숙 능주초 교장

조정숙 능주초 교장은 “능주초가 100년이 넘는 풍파 속에서도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동문들의 후원과 교육자들의 열정, 지역민들의 성원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동문, 지역사회에 협력해 능주초가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고 성실한 배움터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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