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연(이야기연 대표)

정서연 이야기연 대표

‘이태원 참사’,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세월호 참사로 시간이 되돌려진 느낌이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사망자와 부상자들 소식에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메었다. 사상자들의 대부분이 20대 젊은 청년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세월호 참사’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태원 압사 참사’를 겪게 된 것이다.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우리의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믿기지 않는 사고는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깊은 슬픔으로 뒤덮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그 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쏟아냈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수장의 인식 수준이 이 정도라면 과연 대한민국의 안전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까.

CNN, 뉴욕타임스, BBC, NHK 등 주요 외신들이 이태원 압사 참사를 주요 뉴스로 전했다. 특히 CNN은 “미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과 함께, CNN 재난 관리 전문가이자 국가 안보 분석가인 줄리엣 카얌(Juliette Kayyem)의 지적을 보도했다. “당국이 실시간으로 인파를 모니터링하여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할 필요성을 감지할 책임이 있다”라는 것이다. “경찰 경비 병력의 상당수는 광화문 쪽에 배치돼 있었다”라는 이 장관의 브리핑과 함께, “토요일 밤 이태원의 상황과 대조적으로 최근 정치 시위는 종종 시민보다 경찰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라고 지적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계획했던 핼러윈 수업을 전면 취소하고, 다른 수업으로 대체한다는 소식들이 이어졌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했다. 내심 기대하고 기다렸을텐데 많이 실망한 눈치다. 자초지종을 충분히 이야기하며 애도하는 시간을 갖자고 부탁했다. 계속 이어지는 뉴스 소식 때문인지 “진짜 핼러윈처럼 무서웠어요”라는 아이의 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제4조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진다.’, 66조 11에도 지역축제를 열 때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이 책임은 중앙행정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최가 없으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또는 경찰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주최가 없을수록 공공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사고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나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도록 어른답게 책임을 지자. ‘국민 안전은 국가가 무한책임’이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매번 선거 때마다 나오는 영혼 없는 구호가 아닌, 우리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든든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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