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계엄군·시민군 7명 조사…“법적 증거 활용 검토”

 

지난 5월 12일 서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대국민 보고회에서 송선태 위원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남도일보 자료사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가 최면 조사 기법을 활용해 42년 전 진실 찾기에 나섰다.

7일 5·18진상조사위는 지난해 12월부터 육군본부 육군수사단 과학수사센터에 의뢰해 5·18 항쟁 당시 계엄군과 시민군을 대상으로 법 최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 최면 조사는 정신적 충격 등으로 사건 당시를 분명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수사 기법이다. 잠재 의식 속에 감춰진 기억을 끌어내 수십 년 전 사건 진실 규명에 필요한 증거·정황을 찾아낼 수 있다.

현재까지 당시 3공수여단·11공수여단에 소속된 하사·중사·대위 등 계엄군 4명과 시민군 3명이 법 최면 조사를 받았다.

현재까지 당시 3공수여단·11공수여단에 소속된 하사·중사·대위 등 계엄군 4명과 시민군 3명이 조사를 받았다.

1명당 3∼4시간가량의 최면조사 동안 당사자들은 법 최면 수사관의 지도하에 42년 전 기억을 되짚었다.

조사를 받은 한 계엄군은 ‘시민을 포박하고 대검을 휘둘렀다’, ‘희생자들을 나중에 처리하자고 말했었다’ 등 시민군을 대검으로 찌르기까지 과정을 시간대별로 상세히 묘사했으며 최면 내내 죄책감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계엄군도 수색을 위해 버스에 탈 때 어느 발이 먼저 올랐는지, 총이 어느 손에 쥐어져 있었는지까지 기억해냈다.

‘탑승객 수를 세던 중 총소리가 들려 대응 사격을 하다 숫자를 까먹었다’는 구체적인 진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민군도 계엄군의 몽둥이에 맞은 장면, 동료의 머리 일부분이 대검에 맞은 상황 등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5·18 당시 시민군으로 지난해 5월 자신이 ‘김군’이라고 밝힌 차복환씨는 지난 4월 법 최면 조사 과정에서 ‘장갑차에 올라가 총을 들고 머리띠를 둘러맸다’, ‘시위 중 한 여성에게 주먹밥을 받았다’는 등 구체적인 당시 상황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법 최면 조사 결과와 기존에 파악된 정황 등을 토대로, 차씨가 ‘김군’이라고 일컬어진 사진 속 시민군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최종 확인됐다.

또 5·18 항쟁 직후 암매장 시신을 수습했던 광주시청 공무원 조성갑씨도 올해 8월께 법 최면 조사에 참여했다. 조씨는 법 최면 조사에서는 항쟁 직후 시신 36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조씨가 직접 수습한 민간인 희생자 시신이 42구로 알려져 있어 5·18진상조사위는 관련 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위는 또 다른 계엄군 병사 3명에 대해서도 조만간 추가 법 최면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들은 5·18 당시 광주 외곽에 배치돼 너릿재와 주남마을, 송암·효천동 등 봉쇄 작전에 투입된 계엄군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위는 법최면을 통해 확보한 진술을 기존 면담 내용·역사적 기록 등과 비교해 신빙성을 확보하는 한편 법적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사위 관계자는 “법 최면 조사 결과가 역사적 기록과 일치하거나 다른 진술과 동일하면 신빙성을 얻는다고 본다”며 “신빙성만 확보되면 법적 증거로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종채 기자 yj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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