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최부자가 어리숙한 노인인 것처럼 가장하여 궁금하던 것을 넌지시 물었다.

“글쎄! 그놈이 정팔도(鄭八道)라는 떠돌이 놈인데 희한하게도 꽃 같은 기생년 둘을 데리고 다닌다는구만!”

노인이 최부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하! 그래요 정팔도라고요? 어르신! 정팔도가 분명합니까요?”

최부자가 흐릿한 눈을 들어 방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사람아! 저기 정팔도라고 이름이 적혀 있지를 않은가! 하긴 까막눈이라 무얼 알겠는가마는……”

노인이 말했다.

“아! 그래요! 그 참 괴이하네요!”

최부자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허흠! 괴이하다니? 혹여 저자와 관련이 있는 자가 아닌가?”

노인이 자꾸 묻는 최부자를 바라보며 대뜸 말했다.

“아! 아이고! 어르신, 저 같은 하찮은 일자무식(一字無識) 늙은이가 무엇을 알겠나요! 아이구! 아이구!……”

최부자는 머리를 굽신거리며 그 자리를 얼른 도망치듯 피해 버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큰 봉변(逢變)을 당할 것이었다.

손자들 옷감을 사서 손에 쥔 최부자는 부리나케 집으로 가는 산길로 줄달음질을 쳤다. 모양은 허공달이 분명한데 정팔도라니 이 무슨 일인가? 정팔도가 허공달이라는 거짓 이름을 쓰고 다니며 세상을 떠돌다가 춘월과 추월 두 꽃 같은 기생을 얻어 달고 다니면서 역적모의(逆賊謀議)하여 봉기(蜂起)를 일으켜 쫓기는 신세가 되었더란 말인가? 최부자는 여러 생각을 하면서 ‘설마 그럴 리야? 내가 잘못 보았겠지?’ 하고 고개를 자꾸 가로로 젓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부자의 머릿속 한구석에는 자꾸 그 정팔도라는 자가 허공달이라는 확신이 계속 들어차기만 하는 것이었다.

허공달!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최부자는 없었을 것이었다. 만석꾼 부자가 되어 절대로 올려다보지 말아야 할 김진사 따님을 며느리 삼으려다가 흉악한 죄인이 되어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 진즉에 죽었어야 옳았을 것인데 이렇게 꼽추 아들을 장가보내 두 손자까지 얻어 대를 잇고 비록 깊은 산골에서 연명하고 산다고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허공달 그 사람의 공덕(功德)이 아닌가! 그날 이후 허공달 아니 정팔도에 대한 커다란 궁금증에 사로잡힌 최부자는 아무도 몰래 주변 이웃을 들락거리며 귀동냥을 나다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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