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런데 말이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정팔도는 한양을 공략하기 위한 일차 목적으로 전군(全軍)을 몰아 인근 성(城)을 공격하러 출전(出戰)하기 하루 전날 밤에 붙잡히고 말았단다. 그것도 다름 아닌 대장으로 삼았던 구척장신의 사내에게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교활(狡猾)한 자의 배신(背信)이었다. 화적떼에 반란군 역적이 두려웠던 조정에서는 그 두목을 잡아 오는 자에게는 고을 사또의 직책을 하사하겠다고 방을 붙였던 것이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겁나는 반란군이 되기보다는 배신을 하여 눈앞에 있는 저 비리비리한 역적 두목을 감쪽같이 잡아 넘겨주고 고을 사또 벼슬을 하사받아 영예롭게 산다는 것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작자들은 바로 배신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그 구척장신의 젊은 사내는 조정에서 화적떼에 반란군으로 골머리를 앓자 정팔도 오두막에 나타나 굶주린 자처럼 연극을 하고 화적떼나 산적 패거리에 접근할 요량을 꾸미고 온 조정에서 파견한 세작(細作)인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게 반란군을 이용해 자신의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노리는 수단이 뛰어난 간악한 자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양이 부족하고 욕망만을 쫓아가 사는 자들은 절대로 자신을 희생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었다. 모든 행위가 현실 상황에 따른 자신의 욕망 실현만을 위한 간교(奸巧)한 연극과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술수(術數)일 따름이라는 것을 한사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었다.

하긴 저 숲을 지배하고 사는 것이 사자나 호랑이나 독수리일 것 같으나 실상은 여우 아니 생쥐나 참새 같은 재빠르고 약삭빠른 것들이 아닌가? 인간세라고 별다를 것 없었다. 그러기에 유사이래(有史以來)로 전혀 인격적인 수양이 아니 된 오직 문자(文字)나 문장(文章) 암송(暗誦) 혹은 셈법 같은 기이한 술수만을 가진,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자들이 여기나 저기나 큰 칼 차고앉아 찍찍짹짹거리지 아니하던가!

불행하게도 정팔도와 그의 여인 둘은 어이없게도 생명을 구해 준 바로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내에게 한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입에 재갈이 물리고 온몸이 새끼줄로 꽁꽁 묶어져 인근 성주에게 넘겨졌고, 역적 죄인이 되어 한양으로 압송당하게 되었다. 정팔도와 두 기생은 오라에 단단히 묶여 왕의 직접 심문(審問)을 받았다.

“너희들은 그 산중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느냐?”

용포를 두른 용상에 앉은 왕이 셋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놈! 너를 죽이려 했다!”

한 여인이 고개를 바짝 들고 왕을 사납게 노려보며 서슴없이 말했다.

“네 이년! 뭐! 뭐라? 어디서 감히 그 요망한 주둥이를 놀리느냐? 하늘 같은 상감마마 전에서 무슨 망발이냐! 저년의 주둥이를 당장 찢어버려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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