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과 호국 앞장선 ‘뼈대 있는 학교’…112년 역사 자랑
1910년 사숙 출발 ‘미션스쿨’
숱한 일제 탄압 속 애국심 고취
신사참배 거부하며 자진폐교도
1983년 매산고교서 여고 분리

중·고 3개교 7만5천여명 배출
6·25전쟁때 학도병 32명 참전
100주년 기념행사 갖고 새출발
“새로운 1세기 이끌 인재양성

 

매산중학교와 매산고등학교, 매산여자고등학교를 통칭하는 순천매산학교는 전남 동부지역의 근대교육의 산실이자 항일·호국에 앞장선 유산을 계승한 ‘뼈대 있는’ 학교다. 1910년 3월 사숙(私塾)으로 출발해 올해 개교 11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드론으로 촬영한 매산학교 전경./매산고 제공


 

 ‘매산관’은 1930년 건립된 석조건물로 매산학교를 상징한다. 순천의 대표적 서양 근대 건축물로서, 현재 매산중학교 교실로 사용중인 매산관은 매산학교 출발지이자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됐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매산관’은 1930년 건립된 석조건물로 매산학교를 상징한다. 순천의 대표적 서양 근대 건축물로서, 현재 매산중학교 교실로 사용중인 매산관은 매산학교 출발지이자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됐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매산관’은 1930년 건립된 석조건물로 매산학교를 상징한다. 순천의 대표적 서양 근대 건축물로서, 현재 매산중학교 교실로 사용중인 매산관은 매산학교 출발지이자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됐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매산관’은 1930년 건립된 석조건물로 매산학교를 상징한다. 순천의 대표적 서양 근대 건축물로서, 현재 매산중학교 교실로 사용중인 매산관은 매산학교 출발지이자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됐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순천 매산학교는 매산중학교와 매산고등학교, 매산여자고등학교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에 속한 미션스쿨로, 전남 순천시 매곡동에 소재한다. 학교는 박남봉(해발 432m) 기슭에 자리해 매산고에서 바라보면 순천시가지 일부가 내려다 보인다.

1910년대 사숙시대의 매산학교 모습.

◇전남 동부 근대교육 산실

매산은 한자로 梅山으로 표기된다. 학교가 위치한 매곡동 지명과 학교 상징 꽃을 보면 매화나무와 관련돼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매화와 관련돼 있지 않았다.

옛날에 매산고 뒷산인 박남봉은 날아다니는 ‘매’가 많아서 매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매화 ‘매’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날아다니는 ‘매’보다는 ‘매화’가 더 와닿은 듯하다.

매산학교는 순천과 전남 동부지역의 근대교육의 산실이자 순교 유산을 계승한 ‘뼈대 있는’ 학교다. 1910년 3월 사숙(私塾)으로 출발해 올해 개교 11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인 보통학교(초등학교)가 공립으로 세워진 것과 달리 매산학교는 순천에 복음을 전하고자 한국을 찾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매산학교는 설립 이후 일제시대 숱한 고난 속에서도 애국심을 고양시켰다. 해방 후에는 목회자와 인재를 배출하는 못자리판 역할을 했다. 특히 6·25가 발발하자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참전하는 등 호국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보통과 4년제로 시작

매산학교 112년의 역사는 크게 ▲사숙시대 ▲매산학교 ▲은성고→매산고 등 3개 시기로 구분된다.

1910년 3월 미국 변요한·고라복 선교사는 지역 유지들과 힘을 모아 순천시 금곡동 향교 근처에 한옥 한 채를 구입한다. 여기서 학생 30여명을 모아 성경과 신학문을 가르치면서 매산학교의 역사를 시작한다. 출발 당시 수업연한은 보통과 4년이었다. 선교사들에 의해 사숙형태로 국가의 공식 인허가 없이 기독교 교육과 함께 신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1913년 9월에는 순천시 매곡동에 석조건물로 교사를 신축, 이전한다. 고라복을 설립자 겸 초대 교장으로 하며 교명을 사립은성학교로 정한다.

1937년 9월 신사참배 거부로 2차 폐교를 앞둔 교직원과 고등과 학생들의 ‘최후의 헤어짐’.

매산학교는 일제의 황국신민 선서를 거부했다. 일본 천황이라는 우상에 고개를 숙일 순 없었다. 그러자 1916년 조선총독부가 성경교과 교육 문제로 탄압했다. 학교를 자진 폐교할 수밖에 없었다.

1921년 재개교한 수업연한도 6년으로 연장하고 중학교 과정인 2년제의 고등과를 병설했다. 재개교하면서 부근에 여성교육을 위한 매산여학교도 함께 인가를 받아 설립됐다. 여학교 초대 교장에는 백미다 선교사가 취임했다.

이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매산 남·여학교는 일제의 기독교 교육 불허로 상당 기간 비인가 학교로 머물다 1937년 신사참배 강요에 따라 다시 폐교되고 만다. 해방 후인 1946년 매산중학교 이름으로 세 번째 개교를 할 수 있었다.

매산중학교 가사과 실습 모습.(1931년)

◇2차례 폐교 3차례 개교

매산중학교는 1950년 5월 ‘교육법’ 개정에 따라 매산중학교와 은성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된다. 고등학교는 교명을 순천매산고등학교로 변경한다. 그리고 남녀공학이던 매산고는 1983년 12월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가 분리돼 현재에 이른다.

매산학교의 정신은 교훈인 ‘신애’, ‘지성’, ‘자치’에 그대로 담겨 있다. 신애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진리 안에서 산다’는 의미다. 기독교계 미션 스쿨의 설립 취지를 함축하고 있다. 지성은 ‘정직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로서 인격을 연마한다’는 뜻이다. 자치는 ‘일치단결 애국정신에 투철한다’는 내용이다.

교훈을 바탕으로 매산학교는 112년의 성상과 함께 올해 2월까지 7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지역사회와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했다.

올해 2월까지 매산학교 졸업생은 모두 7만5천여명이다. 학교별로는 매산중학교(73회 졸업) 3만2천여명, 매산고등학교(71회 졸업) 2만8천여명, 매산여자고등학교(36회 졸업) 1만5천여명이다.

졸업생 중에는 정치, 입법, 사법, 의료, 교육, 종교계 등의 걸출한 인물들도 많다. 매산고 본관 현관 한 쪽 벽면에는 매산학교를 빛낸 인물들이 사진과 함께 게시돼 있다.

정관계 인사로는 김승규 전 국가정보원장, 황산성 전 환경처 장관, 김명규·이은태·서갑원 국회의원, 성장현 전 서울 용산구청장, 조보훈 전 전남도 정무부지사, 노관규 순천시장, 이용재 전남도의회 의장 등이 있다. 황산성 전 장관은 본래 경남 마산 출신이지만 기독교 학교가 있는 순천으로 이사와 매산학교에서 공부했다. 의료인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장복심씨도 매산학교 출신이다.

교육계 인사로는 박철웅 조선대 전 총장과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등이 있다. 이 교육감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산악인 김홍빈과 코미디언 황제성도 매산학교 졸업생이다.

매산. 매산고 교정에 세워진 6·25참전기념비./김명식 기자

◇학도병으로 32명 참전

학도병은 매산학교 정신과 역사를 더 빛나게 한다.

1950년 6·25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순천에서는 자원입대로 전쟁에 참여한 학도병들이 있었다. 당시 호남신문에 광주지역 학생들의 군부대 자원입대 관련 소식을 접한 순천지역 학생 56명은 혈서 입대 지원서를 제출하고 1950년 7월 13일 순천시 행동우체국 앞 광장에서 출정식과 시가행진을 거행했다.

고작 15살 남짓한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심 하나로 똘똘 뭉친 여수, 순천, 광양, 벌교, 보성, 강진 등에서 모인 180여명의 학도병들은 국군 보병 5사단 제15연대에 배치돼 9일 간의 짧은 군사훈련을 받고 전투에 참가한다.

1950년 7월 25일, 학도병들은 섬진강 인근 화개읍에서 전차를 앞세운 막강한 화력의 북한군 1천여 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학도병이 치른 첫번째 전투인 화개전투다.

이 전투에서 70여명의 어린소년들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북한군의 남하가 지연돼 순천과 인근 주민들이 피난할 수 있었다.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도 벌어줬다.

그 후에도 학도병들은 남강 방어선을 사수하고자 진주 전투에 참전하고,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진동리 지구 전투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하지만 그해 8월 13일 더이상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학도병들은 해산된다.

당시 순천지역에서 참여한 학도병 56명 중 매산중학교 학생이 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순천사범학교 9명, 순천농림학교 7명, 순천중학교 4명, 순천공업중학교 3명, 순천고등공민학교 1명이다. 매산중학교 학도병 가운데 7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매산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비./김명식 기자

◇항일·호국정신 계승

순천시와 보훈처에서는 학도병의 숭고한 희생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6년 매산고 정문 담장에 총 길이 50m에 이르는 ‘6·25 참전 학도병 충혼벽화’를 제막해 호국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매산고는 1985년 10월 교정에 조국 수호에 생명을 바친 30여명의 애국정신과 충성심을 길이 기억하고 후배들이 본받게 하기 위해 학도병 이름을 새긴 참전 기념비를 건립했다.

기념비에는 ‘뜨거운 얼’이라는 제목으로 ‘물이 맑고/산이 좋아/ 하늘 뜻을 좇아 사는/ 빛이 머문 보금자리./매화꽃 동산에 핀/서른 남짓 꽃들이/더욱 거룩 하여라./이끼 시린 역사 위에/비바람도 저며 둔채/큰 사랑 장미 꽃은 /길이 영원 하리라’는 헌시가 적혀 있다.

이렇듯 매산학교는 질곡의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하며 교육 한 길을 걸어왔다. 특히 나라가 백척간두 위기에 놓여있을 땐 목숨을 내놓고 항일과 호국에 앞장섰다. 1964년에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힘을 모아 굴욕적인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기도 했다.

정은균 순천매산고 교장.

◇인간교육·학력신장 ‘조화

매산학교의 이런 정신은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매년 추수감사절에는 감사예배와 함께 학예발표회, 학급대항 찬송가부르기대회 등 대축제를 베푼다. 재미동창생이 보내준 악기로 조직된 32인조 악대는 교내행사는 물론 지역사회의 각종 행사에 이바지하고 있다. 총동창회에서는 매년 10월에 모교 운동장에서 동창체육대회를 개최해 동문과 재학생, 지역사회와의 연대감을 고취시키고 있다.

매산학교는 2010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갖고 새로운 100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기념행사는 학교와 순천 시내에서 사진전시회와 기념탑 제막식, 전야제, 축하음악회 100주년 기념식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매산총동문회는 2001년부터 모금한 장학금 10억원을 학교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매산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인간교육과 학력신장의 조화로운 교육 이념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교육의 결과로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선 광주·전남 고교 중 의치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2년 전 제21대 매산고 교장으로 부임한 정은균 교장(교육학 박사)은 “매산학교는 학생들이 기독교 신앙교육 위에서 원대한 꿈을 품고 더불어 사랑하고 배려하는 힘을 기르는 데 교육 목표를 두고 있다”면서 “온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학교, 사랑의 씨앗을 땅 끝까지 뿌리는 학교, 새로운 1세기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위해 매산을 사랑하는 모든 식구들과 힘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순천/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김현수 기자 khs@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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