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동강대학교 교수)

 

양성관 동강대학교 교수

계절의 변화는 일상생활은 물론 농사를 짓는 데 나침반이 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 조상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기온과 날씨의 변화를 반영하여 24절기를 정해 농사에 활용하여 왔다. 그래서 24절기는 농사력이라고도 하며, 농사에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된다. 가을로 들어서 한로가 되면 습기가 많은 가을 공기는 희뿌연 안개이거나 풀잎에 이슬로 존재하다가 상강에 이르면 서리가 된다. 농장에 갈 때마다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고 느끼는 것이 즐겁다. 가을볕은 따가우면서도 기분이 상쾌하다. 가을볕을 쬐면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고 삶의 귀한 시간이다. 가을에는 고추를 마무리하고 고구마와 생강을 캔다. ‘땅속의 계란’이라는 토란을 수확하고, 호박과 고구마순을 따서 말려 저장하는 갈무리를 한다. 상치와 시금치, 갓, 아욱 등을 심어 가을과 겨울 식단을 준비하며, 월동작물인 완두콩이나 보리, 밀 등을 파종하고 마늘과 양파를 심는다. 가을 농사는 뜨거운 여름을 지내며 땅속에서 자란 덩이 뿌리류의 수확과 함께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나 여름에 수확할 작물을 심느라 무척 바쁜 시기이다.

금년 8월 말에 시작하여 11월 중순까지 광주광역시 북구평생학습관의 예비 도시농업재생사(가을 텃밭) 양성과정에서 자연순환의 섭리와 전통 농사법에 대해 배웠다. 농사는 하늘의 도움과 농부의 땀방울이 합하여 만들어 낸 예술이다. 농사처럼 어려운 일이 없고 농사에는 정답도 없다. 이번 과정을 통해 농사에 대해 조금 눈을 뜰 수 있었고, 자립 농부의 꿈을 갖게 되었다.

자립 농부의 첫걸음은 거름 만들기에서 시작한다. 거름 자립을 위해 내 손으로 몇 가지 거름과 천연 농약 만드는 것을 배웠다. 한약 찌꺼기를 얻어 썩혀서 거름을 만들어보았고, 먹고 난 과일 껍질이나 집안의 음식물 찌꺼기를 흙과 섞어 나무 아래 묻어주면 좋은 거름이 된다. 쌀뜨물이나 막걸리, 달걀(난황유), 마요네즈, 은행잎 등을 이용해 천연살충제도 만들어보았다. 내가 농사를 짓는 주말농장은 광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내가 태어난 고향에 있다. 우리 농장에서는 농약 대신 미생물과 천연살충제를 사용한다. 미생물은 밭에 가는 길에 ‘농업기술센터’에서 1주일마다 받아 농작물에 뿌려준다. 미생물을 먹고 자란 농작물은 훨씬 건강하고 병해충에도 강하다.

자립 농부의 완성은 씨앗의 자립에 있다. 우리 선조들은 농작물 수확 후, 씨앗을 받아 다음 해에 파종하기 위해 토종 씨앗을 보존해 왔다. 토종 씨앗은 수백 년 농사를 통해 진화해오면서 우리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토종 씨앗은 편리한 개량종 씨앗에 밀려 점차 찾아보기 힘든 위기에 놓여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토종 씨앗의 소중함과 계절별 토종 씨앗을 받는 방법을 배웠고, 가을에 파종하는 몇 가지 토종 씨앗을 구하여 이번 가을에 파종하였다. 앞으로도 씨앗 자립을 위해 가능하면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볼 계획이다. 토종 씨앗은 역사를 거슬러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듯 소중했고, 내가 뿌린 씨앗이 생명으로 탄생하고 자란 후 다시 씨앗을 받을 수 있다는 자연순환의 원리에 감사할 뿐이다.

자립 농부에게 있어 농사의 꽃은 밥상이다. 우리 집 밥상에는 가능하면 주말농장에서 절기별로 키운 농작물이 올라온다. 그래서 우리 밭은 식단 자급자족을 위해 다품종소량생산이다. 봄에는 두릅과 냉이, 쑥이 올라온다. 여름 주말 점심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농장에서 수확한 고추와 오이, 방울토마토, 상추에 된장이 최고이다. 가을에는 배추겉절이와 고구마, 부추, 아욱, 시금치 등이 우리 집 식단을 구성한다. 농장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철이면 철마다 자연은 인간에게 필요한 먹거리를 선물한다. 자립 농부의 소담한 식단을 통해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고, 가족에게 넘치는 것은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도 있다.

4차산업 시대가 되어 급변하는 경제 논리와 물질의 혼란 속에서 인간은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적 세계인 농사를 동경하게 된다. 그래서 농사를 ‘4차산업의 꽃’이라고 한다. 농업은 삶의 뿌리이고,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소중한 일이다.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짓는 삶 속에서 소산의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심는 대로 거둘 수 있다는 성실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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