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연재소설 ‘붉은 파도’…제8장 밤의 거리 (180회)

 

“이게 뭐야? 무슨 떨거지들이 엉겨붙었어? 오뉴월 파리떼들이냐?”

송숙미가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묶여있는 정봉필 앞으로 가 정봉필과 오칠동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그녀가 정봉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예, 족같이 돼부렀습니다이. 이 새끼들 명동 오화룡 후예들이라고 안허요? 우덜이 공사를 하고 있는디 들이닥쳐서 쫓가낼라고 해라우. 그러면서 어디서 왔냐, 누구 빽 믿고 왔냐, 따지들 안허요. 대답을 안항깨 저 씨발놈이 나를 묶고 패부러요. 그래서 할 수없이 말해주었지라이.”

“뭐라고?”

“우리 뒤에는 김형욱 정보부장, 이후락 비서실장, 김종필 공화당 대표, 그리고 그 뒤에는 각하가 계신다고 했지라이.”

“병신 새끼!”

송숙미가 단박에 정봉필의 뺨을 후려쳤다.

“협박 몇마디에 기밀을 불어버리면 넌 조직의 책임자가 될 수 없어!”

그리고 다시 뺨을 때렸다. 옆에 서있던 미국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칠동과 그 똘마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쿠, 회장님, 너무 지 입이 간나구 같어서 죄송하구만이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목숨 바쳐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디 이 경망한 입을 조져버리고 싶습니다이.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정봉필을 묵살하고 송숙미가 이번에는 오칠동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나와요.”

오칠동이 송숙미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가 오칠동의 뺨을 후려쳤다.

“건방진 새끼들, 여기가 어디라구 주접 떨어!”

뺨을 맞고도 오칠동이 두 손을 가지런히 앞에 모으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보아하니 보통 상황이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김형욱, 이후락, 김종필,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까지 이름이 거론되니 완전 호랑이굴에 온 기분이었다. 송숙미가 다시 오칠동의 뺨을 후려치며 말했다.

“당신, 선량하게 일하는 사람들 괴롭히는 깡팬가?”

“사모님,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잘 몰라가지고…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정봉필이 재빨리 나섰다.

“사모님이 아니고이 회장님이란 말이시. 미국의 재미동포 기업체 회장님이신디 여그다 사업 펼치시면서 회장님이 되셨제.”

“정 부장, 닥쳐. 또 엉뚱한 말 하니?”

“아이쿠 회장님, 제 입방정이 지랄이란 말이요. 앞으로는 정말 암말 안할라요.”

송숙미가 오칠동에게 지시했다.

“저 사람 결박을 푸세요.”

오칠동이 재빠르게 정봉필에게 다가가 묶은 끈을 풀었다. 정봉필이 일어나 송숙미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한번 두 어깨를 털 듯이 추스르고, 목을 몇 번 좌우로 흔들더니 느닷없이 오칠동의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갈겼다. 오칠동이 그 자리에 쭉 뻗었다.

“씨발놈이 나를 좆으로 봐부리면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여. 일어나 씨발놈아.”

오칠동이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났다.

“몰라봤습니다.”

“개새끼야, 몰라보면 성님도 패냐? 너는 예의도 없냐고? 명동의 조직문화가 고작 이것이냔 말이여? 무릎 꿇어!”

그가 절푸덕 엎드리더니 무릎을 꿇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송숙미가 정봉필을 호되게 나무랐다.

“정 부장, 주먹을 함부로 쓰는 것이 틀렸다니까. 굴복하는 자를 치면 더 나쁜 놈이야. 사과해!”

정봉필이 미적거렸다. 그는 아직까지 누구에게 사과하고 어쩌고 해본 적이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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