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조생이 말을 타고 장가를 들러 산길 들길을 가는데 매서운 눈보라가 칠 것 같은 날씨가 순순히 풀리더니 해가 뚝 떠오르자 마치 봄날 인양 날이 아주 따뜻했다. 본시 장가드는 날 날이 궂고 추우면 신부 될 사람이 쌀쌀맞고 마음이 표독해 일생이 고달프다고 누가 그러더니 오늘처럼 따뜻한 날에 장가를 드는 것을 보니 아마도 조생의 색시는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워 일생이 평안할 것이리라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자꾸 흐뭇해지는 것이었다. 인생일대사(人生一大事) 중 가장 큰 일이 짝을 만나는 혼례식(婚禮式)이 아니겠는가!

일대에서 양반으로 행색깨나 하고 사는 처가 문 앞에 조생이 당도해 보니 이미 그곳은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있었다. 문 앞을 지키고 선 짓궂은 그 마을 청년들의 농을 받아넘기며 조생은 얼굴에 숯검정 잔뜩 칠하고 나선 나리를 맞아 한동안 시달림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대는 어디 사는 뉘신데 이 마을의 귀한 처녀를 훔쳐 가려 하는 것인가?”

숯 검댕이 나리가 마을 청년들과 조생이 가려는 대문 앞길을 막고 소리쳤다.

“허흠! 나는 저기 용천 마을에 사는 조가라는 총각인데 오늘 이 집 최씨댁 처녀에게 장가를 들려고 이 집에 왔소이다!”

조생이 야무지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엇따! 고놈! 목소리 한번 우렁차다! 이 집 최씨댁 규수는 얼굴이 예쁘고 행실이 발라 일대의 총각들이 가슴을 설레고 있는데 막무가내로 가져가면 되겠는가?”

숯 검댕이 나리가 손을 들고 삿대질하며 말했다.

“어허! 처녀가 총각을 그리워하고 총각이 처녀를 사모하는 것은 자연이치(自然理致)일 터! 길을 막는 숯 검댕이 나리는 어서 길을 비켜라!”

조생이 야무지게 따지고 들며 호령했다. 도대체 어떤 새신랑이 오늘 장가를 들러 왔나 하고 남녀노소(男女老少)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벌떼처럼 모여 구경을 하고 있는데 사모관대를 입은 조생이 늠름하게 대꾸했다.

“아따! 그놈! 새신랑 참 똑똑하고 잘생겼네! 말 잘하네!”

구경하던 할머니가 소리쳤다.

“아하하하하! 새신랑 참 야무지다!”

아주머니며 처녀들이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 마을 최고의 아름다운 처녀를 빼앗아 가다니! 절대로 못 간다고 여쭤라!”

얼굴을 시꺼멓게 숯을 칠한 숯 검댕이 나리가 막무가내로 길을 막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뒤에 서 있는 마을 총각들 예닐곱 명도 길을 막고 함께 소리쳤다. 이들은 옥신각신 장가들러 오는 새신랑이 어떤 사람인가 알아도 보고 또 주변을 웃기기도 하면서 한바탕 잔치마당의 흥을 북돋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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