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양반 부잣집에서 너무 적다! 너무 적어! 크게 한 번 더 뿌려라!”

동네 사내들이 소리쳤다.

“어허! 좋다! 어서 길을 열어라!”

신부 측에서 나온 사내가 다시 철컹 엽전 꾸러미를 길 위에 던졌다. 숯 검댕이 나리가 그것을 얼른 주워들고 헤아렸다.

“아하! 쉰 냥이다! 쉰 냥! 이제 길을 열까 말까!”

“신부가 애간장 탄다! 어서 길을 열어라! 잡놈들아!”

숯 검댕이 말끝에 할머니가 소리쳤다.

“에이 잡놈들아! 신랑도 속이 탄다! 어서 길을 열어라!”

또 다른 할머니가 소리쳤다.

한바탕 또 옥신각신 밀고 당기는 놀이가 있고서야 마침내 조생은 신부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조생은 백년해로(百年偕老)를 다짐하며 기럭아비가 들고 온 홍색 비단 보자기에 싼 나무 기러기를 받아들고 소반 위에 올려놓고는 방문 앞에 나와 앉은 장모에게 절을 했다. 장모가 나무 기러기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 가운데 큰 상이 차려지고 청청(靑靑)한 대나무로 장식한 그 위에 수탉 암탉이 올려지고 갖은 음식들이 풍성하게 올려진 초례청(醮禮廳)이 차려져 있었다. 조생은 초례청 앞 동쪽에 섰다. 이윽고 좌우로 시중드는 사람들에 이끌려 나와 서쪽에 선 신부의 얼굴에는 하얀 너울이 드리워져 있어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드디어 혼례가 시작되었다.

신부가 세숫대야 맑은 물에 손을 씻고는 신랑을 향해 절을 두 번 했다. 조생도 절을 했다. 그리고는 표주박을 나란히 반으로 쪼갠 잔에 술을 부어 서로 마시는 합근례를 했다. 하나인 표주박을 둘로 쪼갠 잔을 들고 술을 마시는 것이었는데 쪼개진 것을 서로 합친다는 부부화합(夫婦和合)을 뜻하는 것이었다.

혼례식이 다 끝이 나고 왁자지껄 사람으로 들끓던 잔치도 끝이 나고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오자 드디어 조생은 신부와 함께 고대하던 신방(新房)에 들게 되었다. 방 윗목에는 커다란 등잔불이 켜져 있었고 거기 조그만 주안상(酒案床)이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신랑 신부가 자기 전에 마시고 자라는 합환주(合歡酒)였다.

조생은 쿵쾅쿵쾅 자꾸만 물 방아질 하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 가운데로 합환주가 차려진 상을 옮겨왔다. 그리고는 다소곳이 앉아있는 신부의 얼굴을 가리고 늘어진 하얀 너울을 벗기려고 손을 가져갔다. 중매쟁이 할머니 말에 색시가 꽃과 달을 닮은 천하미색(天下美色)이라고 하더니 과연 어떤 얼굴일까? 조생은 숨을 멎고는 하얀 너울 끝자락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살그머니 잡고 위로 올려 벗기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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