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가상의 문을 통해 만나는 80년 5월
이이남 작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展
내년 4월 30일까지…영상·설치 20여점

이이남 作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

42년 전 국민학생이었던 미디어아티스트의 기억 속에 남겨진 조각들이 미디어아트를 만나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거듭났다. 기억의 뿌리로 돌아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이하 G.MAP)은 2023년 4월 30일까지 미디어아트 특별전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G.MAP 개관전 이후 대규모 전시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예술적 성과를 이룬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참여한다.

이이남 작가는 고전 회화의 축적된 시간성을 동시대적인 미디어아트 기술에 접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감성이 혼재하는 흥미로운 시공간을 제시해왔다. 이번 전시 주제성 역시 흘러가는 시간과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아 그 안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에서 시작되며, ‘빛’을 비춤으로써 영원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징적 구조를 띤다.

전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은 1980년 5월 전남 담양의 한 국민학교 5학년인 ‘이이남’을 통해 시간을 빌려온다. 이 작가는 어린시절 유난히 죽음에 대한 꿈을 많이 꿨다고 한다. 작가는 당시 간첩·공산화·전쟁이란 단어들이 난무해 들녘을 누비던 어린아이의 무의식까지 죽음이라는 공포가 침투해있었다고 회고한다.

이 작가에게 있어 ‘죽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두려움인 동시에 자기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양식이 됐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유년시절의 기억을 현재와 결합해 정신적 뿌리와 예술적 근원에 대해 고찰한다.

전시는 G.MAP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이이남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가상의 문으로 설정한다. 당시 학살과 피흘림과는 무관했던 소년의 자전적 경험을 동화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역사적 아픔과 일상적 삶의 대비를 극대화한다. 이 작가는 작품 안에 양면적 요소를 적절히 가미시켜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미지 너머의 각자의 기억과 연결시키도록 한다.

작품 ‘책 읽는 소녀, 기억의 뿌리’는 흔히 초등학교에서 볼 수 있는 소녀 동상이 관람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 주변에는 낙서의 파편들이 영상과 페인팅으로 채워지는데, 이는 이이남 작가의 머리카락을 유전자정보연구원으로 보내 DNA 정보로 나타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낙서의 흔적을 통해 기억이란 불완전함을 나타낸다.

횃불을 들고 있는 소년과 42대의 선풍기가 대치하고 있는 작품은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이다. 선풍기에는 바람을 가르며 뛰노는 아이의 사진과 작가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겨있다. 또한 회전하는 선풍기 날개는 마치 80년 5월 광주 도심 상공을 뒤덮었던 헬기 프로펠러와 빗발쳤던 총소리를 연상케 한다.

이이남 작가는 놀이와 헬기의 대비를 통해 일상과 전쟁은 동시간에 일어난 사건이며, 모순 가득한 현실에서 각자의 기억은 사실을 간직하기보다는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온전히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한정하지 않는다. 기억이 시간의 순서가 아닌 파편으로 남아있듯이,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층별 로비를 포함한 곳곳에 작가의 기억을 숨겨놓아 관람객이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편, 이번 전시 기간동안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외벽 미디어 파사드에서도 이이남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며, 작가와 함께하는 부대행사 또한 진행될 예정이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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