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 기증 사례…순회전 첫 출발
문화 향유의 장…관람객 23만명 북적북적

국립광주박물관은 오는 2023년 1월 29일까지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개최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공개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감상하고 있는 시민. /남도일보 DB

2022년 달력도 어느 덧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올해 국내 미술계 가장 핫 이슈는 단연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일 것이다.

미술사에 있어 미술품 수집과 기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유서 깊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기증품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미술 소장품의 수준은 국가의 문화수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 문화선진국의 기부·후원 운영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이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받게된 이유기도 하다.

삼성가는 지난해 고(故)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미술품과 문화재 등 총 2만 3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증 사례로 기록되는 한편,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고유명사까지 탄생케 했다.

지난 10월 6일 오전 10시 광주시립미술관 입장 시작과 함께 수십여명의 시민들이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을 관람하기 위해 몰려드는 모습.

◇‘노블리스 오블리제’ 결과물
‘이건희 컬렉션’은 부친인 이병철 회장부터 이어져 온 이건희 회장의 고품격 컬렉션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결과물’이다. 이들 삼성가 부자(父子)는 대를 이은 문화재 지킴이를 자처하며 100여점이 넘는 국보급 및 한국미술품을 수집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고미술품은 물론 국내외 근현대 거장의 작품들까지 수집하면서 국민이 공유하며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즉, 고인의 유지덕분에 전국민이 문화적 수혜를 받게 된 것이다. .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진행중인 이건희컬렉션 지역 순회전에 전시된 미디어아트와 배치된 ‘범종’(고려 10~11세기)

2만 3천여 점에 달하는 기증품 가운데 고미술품 2만 1천6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 국립박물관에, 국내외 거장들의 미술작품 1천4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각 작가의 연고지 미술관에 기증됐다. 이건희 컬렉션의 리스트를 살펴보면 국보 수준의 한국 고미술품부터 고갱·모네·피카소 등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까지 포함돼 있어 많은 시민으로부터 주목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박수근 작 ‘세 여인’

◇지역 간 문화 불균형 해소
이에 기증 1주년을 맞아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는 4개월여 동안 누적 관람객 수 23만여 명에 달하는 기록을 세웠다. 귀한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하는 관람객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중섭 作 ‘ 은지화(銀紙畵)’

이에 정부는 수도권에 집중된 지역 간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지역순회전’을 기획했고, 비수도권 시민들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향유의 장을 마련했다.
‘이건희 컬렉션 지역순회전’은 올해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경남지역에서, 2023년에는 대전광역시를 비롯한 7개 지역, 2024년엔 제주를 비롯한 3개 지역에서 순회전을 개최한다.

천경자 作 ‘만선’

◇‘예향의 도시’ 광주서 첫 출발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이하 지역 순회전)’은 지난 10월 초 국립광주박물관과 광주시립미술관 등 호남 화단의 근거지인 광주에서 첫 문을 열었다. 이는 그동안 모든 정부의 혜택에서 홀대받았던 서러움을 일부 녹이는 동시에 ‘예향의 도시’로서 의미를 더했다. 지역 순회전 개막 당시 광주 문화예술계는 뜨겁게 달아올랐으며,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선보이면서 지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김홍도 作 ‘화훼도(조선 18세기 말)’

먼저 광주시립미술관 3~6전시실에서 개최된 이건희 컬렉션 한국 근현대 미술 특별전(10월 4일~11월 27일)은 ‘사람의 향기, 예술로 남다’라는 부제로 진행됐다. 당시 특별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50점)과 대구미술관(7점), 전남도립미술관(6점), 광주시립미술관(30점)이 소장하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작품과 김환기·박수근·이중섭·천경자 등 근현대미술 거장 45명의 작품 93점을 선보였다.

특히 서양화의 도입으로 변화된 한국 미술계의 상황을 시작으로 20세기 후반 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역사적 상황 속에서 변화된 한국 근현대미술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는 한국 근현대미술 대가의 작품이

김홍도 作 ‘혜능상매도(조선 18세기 후반)’

대거 소개되면서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전시 섹션도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계승과 수용 ▲한국화의 변용, 혁신 ▲변혁의 시대, 새로운 모색 ▲추상미술과 다양성의 확장 등으로 나눠 한국 미술계의 흐름을 여실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지역 순회전은 앞선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와는 구성을 달리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에서 공개되지 않은 컬렉션이 대거 공개되면서다. 이에 따라 지역민뿐 아니라 타지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이 기간 동안 광주시립미술관을 방문한 누적 관람객 수는 4만6천573명으로 집계됐다.

신윤복 作 ‘기녀출행도(조선 18-19세기)’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부제로 진행 중인 국립광주박물관(10월 5~2023년 1월 29일·이하 광주박물관)에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 등 고서화 작품과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도자기 및 조각들을 만나볼 수 있다.

광주박물관에서 진행중인 이건희 컬렉션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기증 1주년 특별전의 연장선이지만 구성이 다르다. 수도권에서 선보인 고미술품 일부와 함께 김홍도와 신윤복 등 그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과 고려청자 명품들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국보·보물급 16건 31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함께 170건 271점을 선보이는데 이 가운데 39건 62점이 처음 공개되는 전시품들이다. 수도권을 방문하지 않아도 지역에서 국보급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 만큼 그동안 광주박물관을 다녀간 누적 관람객 수는 지난 4일 기준 18만 1천300명이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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