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할머니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무산 개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수상자 취소 결정은 처음”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월 2일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의 광주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월 2일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의 광주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양금덕(93) 할머니의 2022 대한민국 인권상(국민훈장 모란장) 수여 무산에 대해 “대한민국 인권상까지 일본의 눈치를 봐야하느냐”며 분노했다.

단체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2022 대한민국 인권상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가 추천됐지만 행정안전부가 국무회의에 안건 상정을 하지 않아 최종 무산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며 “심사를 거쳐 확정된 최종 추천 대상자가 국무회의 절차를 거치지 못해 수상이 무산된 경우는 처음이다”고 주장했다.

또 “인권위가 시상하는 ‘인권상’은 인권옹호와 인권 발전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인사에게 시상하는 것으로, 인권분야 최고 영예로 여겨지고 있다”며 “양 할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이며 199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첫 소송을 시작한 이래 올해까지 30년 동안 권리회복 운동에 기여한 대표적 인물이다”고 밝혔다.

이어 “2018년 대법원 승소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법원의 배상 명령을 4년 넘도록 이행하지 않으면서, 한국 내 자산 강제매각 문제를 두고 한일 간 갈등의 한 축에 서 있다”며 “인권상과 서훈 수여가 무산되는 과정에 외교부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외교부는 인권위가 면밀한 심사를 거쳐 최종 추천한 양 할머니를 협의 필요 대상으로 분류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외교부가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대일기조에 따른 일본의 비위 상할 민감한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지난 9월 홈페이지에 양 할머니가 포함된 ‘2022년 대한민국 인권상 포상 추천대상자’ 명단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했지만, 외교부가 절차상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제동을 걸자 양 할머니에 대한 서훈 안건은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시민모임은 “외교부가 양 할머니의 훈장 수여와 관련해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의견을 낸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외교부는 지난 7월 (전범기업 강제집행과 관련한) 판결을 보류해달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해 강제집행을 못 하게 하더니 인권상 수상까지 방해했다”며 “이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는 임재성 변호사 등에 따르면 인권위는 9일 ‘세계 인권의날’ 기념식에서 양 할머니에게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양 할머니에 대한 서훈 안건은 지난 6일 국무회의는 물론 8일 임시 국무회의에도 상정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수여하는 서훈인 만큼 중앙행정기관의 장(인권위원장) 추천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양 할머니의 수상이 사실상 불발된 것이다.

임 변호사는 “외교부가 양금덕 선생님의 서훈에 대해 ‘사전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는 의견을 낸 사실을 확인했다”며 “한국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로 30년 동안 싸워온 피해자에게 상을 주면, 일본이 불편해할까봐, 현재 논의되는 강제동원 관련 한일협의에 변수가 생길까봐, 외교 쪽과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는 이날 광주에서 이뤄진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의 면담에서도 양 할머니 서훈 불발에 대해 항의했다. 이에 외교부는 “서훈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절차상 관계 기관과 사전 협의가 필요했고, 관련 보고를 늦게 접해 의견을 냈다”며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제 강점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돼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양 할머니는 2012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일본 측이 배상 명령을 이행하지 않자 다시 법적 다툼을 통해 해당 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매각 하라는 법원 결정을 받아냈다.

일본 측은 이 결정에 불복하고 대법원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외교부는 대법원에 판결 연기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윤종채 기자 yj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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