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역사이야기-28. 홍어와 영산포
전라도의 맛, 코를 톡~쏘는 그대 이름은 홍어
2018-01-28 최혁
최혁 주필의 전라도 역사이야기
28. 홍어와 영산포
전라도의 맛, 코를 톡~쏘는 그대 이름은 홍어
먹고 살 길 찾아 흩어진 호남사람들 때문에 전국 음식화
다양한 요리 개발로 젊은 여성들도 즐겨 찾는 음식으로
고려 때 왜구 피해 영산현(흑산도) 사람 내륙으로 이주
정착한 곳 영산포라 이름 짓고 떠나온 바다 찾아가 조업
흑산도~영산포구까지 배로 보름정도 홍어숙성에 알맞아
막걸리와 잘 어울려 …유채꽃 필 무렵 홍어축제도 인기
전라도의 맛, 홍어
2018년은 전라도 정도(定道) 1천년이 되는 해다. 고려 현종은 재위 9년인 1018년에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지방행정구역을 설치했다. 전라도라는 행정명칭은 전라도가 전라남·북도로 나뉜 조선 고종 1896년까지 878년간 사용됐다. 지금은 전라도를 대표하는 도시가 광주와 전주이다. 나주가 광주에 밀려있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음식에 관한한 전라도를 대표하는 것이 홍어이니 영산포를 품고 있는 나주의 영화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전라도 음식하면 우선 홍어를 떠올린다. 수십 가지 반찬이 즐비한 남도밥상이나 나주곰탕, 혹은 여수 게장을 꼽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전라도하면 홍어를 생각한다.
홍어는 그 특유의 썩은 듯한 냄새와 톡 쏘는 독한 맛에 일반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 맛을 들이면 묘한 중독감에 빠지게 된다. 영산포 홍어거리에 있는 식당에 가면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홍어정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삭힌 홍어 외에도 홍어를 주재료로 해 현대인(여성)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찜과 튀김요리 등을 내놓은 것도 이유다.
홍어는 잔칫집이나 상갓집의 음식상에 꼭 올라야 하는 고기다. 사람들은 상을 받을 때 홍어가 올라와 있으면 “제법 신경을 썼구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혼주나 상주가 홍어가격이 비싼 탓에 간재미 무침으로 홍어회를 대신하면 내심으로는 몹시 서운하다. 모처럼 홍어 한 점하려 했는데 그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기 때문이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서울과 경상도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일반적으로 전라도 사람들만 홍어를 즐겨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홍어유통업자들에 따르면 울산과 창원 등지에 많은 홍어가 납품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경상도 사람들이 삭힌 홍어맛과 비슷한 돔배기 맛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이유인 듯싶다.
삭힌 홍어가 생긴 유래
고려 때 왜구는 경상도에서 전라도 일대 해안가는 물론이고 내륙 깊은 곳까지 쳐들어와 노략질을 했다. 왜구는 처음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상도 해안지역을 약탈했다. 그러다가 차츰 세곡이 쌓여있는 조창과 쌀을 개경으로 실어 나르는 조운선을 공격했다. 왜구들은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몇 개월 동안을 머물며 분탕질을 하기도 했다.
특히 섬 지역은 무방비 상태였다. 왜구가 나타나면 그대로 죽임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려조정은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모두 뭍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를 쇄환정책(刷還政策)이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로부터 섬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섬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켰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섬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쇄환정책에 따라 흑산도 사람들은 모두 내륙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영산현 사람들은 서해안 바다로 이어지는 강을 거슬러 올라와 지금의 나주근처 강변에 터전을 잡았다.
그곳은 영산현이 됐다. 흑산도 사람들은 새로 터를 잡은 곳의 강을 영강 혹은 영산강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영산강과 바닷길을 되짚어 흑산도 근처까지 다시 나가 고기잡이를 한 뒤 영산강으로 돌아오곤 했다.
대개 동물들은 노폐물을 오줌으로 내보낸다. 홍어는 그 요소를 피부로 내보낸다. 그래서 홍어 피부에는 암모니아가 주성분인 노폐물이 가득했다. 그런데 영산포 사람들이 흑산도 일대에서 홍어를 잡아 영산포로 돌아오는 보름정도의 기간에 이 암모니아 진득한 홍어가 자연발효가 된 것이다.
다른 생선들은 상해서 먹지를 못하는데, 홍어만은 먹을 수 있었다. 암모니아 발효의 특징은 잡균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름 정도 기간이 지나도 완전히 썩지 않고 적당히 발효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영산포 어부들이 흑산도에서 잡아온 홍어를 꺼내 먹어보니 약간의 썩은 냄새와 톡 쏘는 맛이 비위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이게 별미였다.
그러고 보면 명성 높은 ‘영산포 홍어’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보자면 잡힌 홍어의 원산지는 흑산도여야 하고, 가공지는 영산포여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온난화로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흑산도 쪽보다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도 앞바다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고 있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국내산 홍어의 상당량은 원산지가 인천이다. 이와 함께 영산포 홍어의 상당량이 수입품이다. 예전에는 칠레산 홍어가 많았지만 요즘은 아르헨티나·알래스카 산 홍어가 많이 수입되고 있다. 그렇지만 홍어를 제대로 숙성시켜서 ‘명품 홍어’를 만들어내는 곳은 영산포이니, 영산포 홍어의 명성에는 그리 흠될 것이 없다.
홍어X 이야기
“만만한 게 홍어X”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을 홍어X처럼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다. 어쩐 이유로 홍어X이 그렇게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을까? 홍어는 암컷이 맛이 좋다. 그래서 수컷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
그래서 홍어를 잡은 어부들 가운데 일부는 수컷 홍어를 잡으면 으레 수컷의 생식기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수컷은 꼬리부분에 두 개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는데 어부들은 그 생식기를 싹둑 잘라서 암컷 홍어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허망하게 떼어져 버리는 수컷 홍어의 생식기를 빗대 “만만한 게 홍어X”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수컷 홍어 X을 쓱싹 잘라서 바다에 버렸던 어부들은 비양심적이기는 하지만 순진했다는 생각도 든다. 홍어에는 막걸리가 잘 어울린다. 막걸리에는 단백질과 유기산이 들어있어 홍어의 톡 쏘는 맛을 중화시켜 준다고 한다.
영산포 홍어축제
나주 영산포에서는 매년 유채꽃이 필 무렵, 홍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4월 14일부터 3일 동안 영산강 둔치체육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13번째다. 홍어축제에서는 홍어의 톡 쏘는 맛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행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홍어거리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는 선착장에서는 황포돛배에 올라 1시간동안 영산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최혁 기자 kjhyuckchoi@hanmail.net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