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55]섬과 근대문화유산
‘고립·소통·문화다양성’내재된 공간적 특성 반영 군사시설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조성돼 노동착취 현장·전쟁 피해 고스란히 담겨 공유해야 할 국제유산으로서 가치 충분 사라질 위기 문화유산 발굴·보호조치 시급
섬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섬에 남아 있는 관련 흔적은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섬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은 섬 공간의 특수성과 연계시켜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섬은 크게 ‘고립성’, ‘소통성’, ‘문화다양성’의 공간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고립성과 소통성은 지리적인 환경이 그 배경이고, 문화다양성은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온 섬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는 섬의 ‘고립성’ 때문에 생겨난 근대문화유산 사례이다. 일제강점기 섬에 설치된 ‘감화원’, ‘재생원’, ‘특수병원’, ‘포로수용소’와 같은 시설이 해당한다.
‘감화원’은 명목상은 일제강점기 사회복지시설이다. 소년 범죄자를 모아서 교육을 통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양성한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는 어린 고아들을 모아서 일제가 전쟁에 나가 천황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운영된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전남 목포 고하도와 경기도 안산 선감도 등에 감화원이 설치되었다.
‘재생원’은 일종의 고아원이다. 성격은 복지시설이지만 도시에 모여든 부랑아들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섬으로 격리하는 목적이 배경에 깔려 있다. 현 신안군에 속한 구도에 설치되었던 재생원이 그러한 사례이다. 격리가 필요한 의료시설도 이와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전남 고흥 소록도의 한센병 관련 시설이다. 한국전쟁기에 설치된 포로수용소 시설도 섬의 고립성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경남 거제도가 유명하다. 거제도 외에도 통영시 한산면에 속한 추봉도나 용초도 등에도 관련 시설이 상당수 보존되어 있다.
두 번째는 ‘소통성’과 관련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등대와 군사시설 등이 해당한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 대비하여 형성된 것이 많지만 섬이 지닌 소통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근대기 우리나라 주요 해역의 요충지에 등대가 설치되었다. 암초의 위험에서 일본해군 전함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초 설치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등대는 해상 의병 활동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완도 당사도 등대, 신안 비금도 칠발도 등대가 그러한 사례이다.
근대 군사 시설은 크게 러일전쟁기,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기에 조성되었다. 일제는 러일전쟁에 대비해서 부산 가덕도, 신안 옥도와 주변 섬, 인천 월미도 등 우리나라 주요 해역의 섬에 비밀 해군기지를 설치하였다. 일본해군과 관련된 이러한 시설들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졌고, 태평양전쟁기에는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일제의 패망이 짙어지던 1944~1945년에 연합함대가 일본 본토를 향해갈 때 지나가는 해로, 즉 제주도와 남해안 사이의 섬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제주도를 비롯하여 목포 고하도, 신안 자은도·비금도, 해남 어불도, 여수 거문도 등에 태평양전쟁 시기에 형성된 해군진지·방공호·어뢰정 위장시설·해안포대 등 군사시설이 조성되었다.
세 번째는 ‘문화다양성’과 관련된 근대문화유산이다. 섬은 어업·염업·농업·갯일·양식업 등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과 그 삶을 표현해오는 방식이 내륙의 도시보다 훨씬 다채롭다.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온 섬사람들의 삶과 경제활동이 근간이 되어 다양한 근대문화유산이 형성되었다. 돌담문화, 파시문화, 천일염전, 어로문화와 수많은 흔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못했다.
돌담에는 해안가에서 바람과 함께 살아왔던 섬 주민들의 생활상이 반영되어 있다. 신안 흑산도 사리, 비금도 내촌마을, 완도 청산도 상서마을 등의 돌담이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그 외에도 완도 여서도, 신안 우이도 등 많은 지역에 섬마을 돌담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언제 그 원형이 사라질지 모르는 형편이다. 근현대 시기 ‘어업근거지’와 관련된 시설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관련 흔적을 발굴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정당한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주민들이 공동노동으로 만든 옛 부두와 방파제의 흔적도 그 범주에 해당한다. 염업과 관련된 천일염전의 경우는 그야말로 섬의 경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해방 이후 서남해 지역 섬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것이 천일염전의 조성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천일염전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지역도 등록 해제를 요구하기 시작한 실정이다. 태양광 설치 등으로 급변하는 섬의 사회환경 속에서 대표적인 근대 염전의 원형을 어떻게 보존하고 전승할지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앞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어로문화와 관련된 근대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멸치잡이는 섬 어로행위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섬 어촌 마을에는 멸치를 잡아서 말리거나 끓이는 사용하는 시설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곳도 있다. 또한, 물고기를 잡아서 염장했던 시설물이 남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업활동과 관련된 이러한 시설들은 그동안 문화재라는 관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때 노후화의 상징이자 철거의 대상이었던 근대문화유산이 요즘은 귀한 대접을 받는 상황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섬에 형성된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과 보호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경남 거제시의 지심도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이 철거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소식이다. 섬연구소(소장 강제윤)의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작은 섬에 14채의 근대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는데, 일본군 전등소 사택·헌병주재소·병사식당·조선인 징용자 숙소 등으로 활용되던 건물이다. 지금도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에 대한 진실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런 흔적들을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해야 한다. 육지에 있었으면 진작 보존 조치가 이루어졌을 근대문화유산들이 섬에 있다는 이유로 이처럼 여전히 철거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 태평양전쟁기 군사시설과 관련된 흔적들은 개별 지자체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현황을 파악하고 보존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후 ‘사도 광산’을 또다시 지정하려고 추진하는 것에 감정적으로만 분노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내에 남아 있는 강제 동원의 흔적과 침략전쟁의 유산인 군사시설들을 보존하고,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섬에 남아 있는 군사시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한국인을 강제 동원에서 조성한 것들이다. 노동착취의 현장이자 세계 인류가 태평양전쟁기 피해 상황을 함께 공유해야 할 국제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섬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에는 섬 공간의 특수성과 섬사람들의 삶, 그리고 대한민국 근대사의 아픔이 담겨 있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관심과 활용이 필요하다.
글·사진/최성환(목포대 사학과·도서문화연구원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