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56]고령화된 섬, 어업문화 장인이 사라진다

“장인 발굴만이 무형문화유산 지키는 지름길”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전수조교 감소 추세 처우 개선 통해 발굴·계승작업 체계화 시급 신안군 낙지장인 선발·홍어썰기학교 ‘위안’ 처지 열악한 ‘어업문화’ 불쏘시개 역할 기대

2022-03-27     김우관 기자


 

신안군 낙지장인대회에서 뽑힌 낙지장인.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브리콜뢰르’(Bricoleur)를 부족사회의 ‘문화 담당자’로 소개한바 있다. 브라질의 인디언 부족을 연구하던 레비스트로스는 이 원주민들은 야만인이나 원시인이 아닌 길들여지지 않은 그들만의 ‘야생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본지 연재물 전남희망아이콘 ‘섬·바다’이야기-31편 참조).

특히 원주민들은 한정된 자원에 대비해 정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습관적으로 자루에 담아 보관해 두는 관습이 있는데 후일 이 재료들을 가지고 능숙하게 만들어내는 이른바 ‘브리콜라주’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브리콜라주(Bricolage)는 프랑스어 ‘브리콜레’(Bricoler)에서 유래됐고, 사전적 의미로는 “만지작 거리다”의 뜻으로 “주위에 있는 자원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재치 있게 만든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처럼 제한된 재료와 도구를 가지고 창의성을 발휘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브리콜뢰르’라 한다.

신화와 의례로 대표되는 부족사회의 지적 활동을 손재주꾼의 역할을 통해 소개하면서 야생의 사고는 일관된 질서가 존재하는 ‘구체의 과학’, 즉 나름대로의 과학적, 논리적 사고를 지녔다고 주장했다. 신화적 사고를 통해서 브리콜뢰르를 소개하면서 현대의 과학자, 엔지니어, 그리고 예술가의 활동과 구별하고자 했으며,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손재주를 가진 장인은 다행히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장인의 나라 일본의 가나자와가 공예공방 산업의 중심지가 된 비결은 공예인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이 있어서이다. 공예인은 일본 장인정신의 원형으로 이들 장인의 현장 훈련을 체계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직인(職人)대학교와 공방을 설립, 신규 공예인은 장인학교의 선배 장인 밑에서 오랫동안 도제식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한 가지 일에 전념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가 되려는 철저한 직업의식인 ‘모노즈쿠리’(ものつくり), 즉 장인정신을 통해 그 맥을 이어간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직업훈련제도를 통해 숙련된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 제도 역시 뛰어난 전문기술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현장실습과 수업을 병행하며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장인을 배출하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뜻의 라틴어 ‘Magister’ 에서 유래한 마이스터는 직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실기과정을 이수하고 정규시험을 통과한 명장들에게 부여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기술장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지원하고 교육하는 특별한 제도인 ‘콩파뇨나주(compagnonnage)’가 있다. 본래 프랑스어로 동료, 동지라는 뜻의 ‘콩파뇽’(Compagnon)에서 파생되었는데, 일종의 미숙련 직인조합 형태로 석재·목재·금속·가죽·섬유·식품 관련 작업과 관계된 지식과 노하우를 전승하는 독창적인 방식이다.

프랑스 전통 훈련시스템으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도제제도의 방식이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기술과 지식을 전수받는 훈련법으로 알려져 있다. 주어진 직업에서 기술을 배우고 개발하기를 원하는 16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직인조합에 가입하여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 기간에 수습생들은 프랑스와 국외에서 도시마다 돌아다니며 다양한 지식과 지식의 전수 방법을 직접 체득한다.

콩파뇨나주는 일반적으로 어떤 고대의 수공 기술을 사용하고 가르치고, 기술 훈련의 진정한 우수성을 전달하며, 무엇보다 인격 함양과 노동자의 훈련을 긴밀하게 통합한다는 점에서 2010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특히 콩파뇽은 과거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현상이면서, ‘전승’이라는 역할과 ‘사명’이라는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훈련생들은 젊은 견습생, 후보생을 거쳐 최고의 꼼파뇽 장인이 되기까지 약 3년간의 훈련과정을 거치는데, 기술을 배우는 이 작업장을 단순히 학교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 이유는 끈끈한 동료애와 유대감을 넘어 ‘가족’ 같은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인 문화에서 기술과 함께 공동협업을 경험할 수 있는 이 ‘작업장’의 생활은 일과 일상생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사회학자 세넷(Richard Sennett)은 이 작업장을 일종의 “문화적 장소”라고 칭하며 지식의 저장고가 넓어지는 과정을 배우게 되는 곳이라고 하였다. 기술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현명한 지혜를 터득하는, 어쩌면 오래된 미래와 같은 곳이다.

아쉬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문화제작자, 즉 장인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는 데 있다. 문화재청에서 발표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전수교육조교 현황 점검에서 보유자나 전수조교가 없는 종목이 전체 146개 중 44개(30.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자 부재종목으로 ‘나주의 샛골나이’(제28호)와 ‘곡성의 돌실나이’(제32호)도 포함되어 있다(최근 돌실나이는 제140호 ‘삼베짜기’에 통합되었다).

무형문화재는 국가나 시·도가 지정한 문화유산이 아니면 별도의 지원을 받지 못해 관리가 어렵다. 더욱이 소멸 위험이 큰 전통지식과 생활관습의 단절의 위기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섬 지역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무형문화유산의 발굴·계승작업은 더이상 지체할 겨를이 없으며 이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재생산된 결과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지역문화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지역의 경제적 가치의 창출까지 기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신안군이 시행하는 흑산홍어썰기 민간자격증 시험에 참여한 교육생들의 모습./신안군 제공

신안군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무안-신안 갯벌낙지 맨손어업’(제6호)의 계승을 위해 ‘낙지장인 선발대회’에 이어 ‘흑산 홍어잡이어업’(제11호)의 보전과 홍보를 위해 ‘홍어 썰기학교’를 운영중이다. 어업유산인 낙지잡이 기술 보전 및 전수를 위한 장인 선발과 ‘낙지학교’개설에 이어, 고령화에 따라 홍어를 써는 인력의 절대 부족으로 홍어썰기 기술자 양성교육을 진행하여 2기 수료자까지 배출하고 민간자격증을 수여했다. 올해는 ‘홍어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홍어썰기과정’과 ‘홍어주낙정리과정’으로 구분·확대할 예정이며, ‘홍어주낙정리 기술자’ 민간자격증도 등록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직인대학교와 마이스터, 콩파뇨나주 제도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고령화된 섬 사회의 어업문화를 지속가능하게 할 첫걸음이 되길 기대해본다. 더 늦기 전에 사람의 손으로부터 손으로 이어지는 장인의 기술을 전수할 교육이 절실하다.

글·사진/이경아(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