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58]기후와 식생, 그리고 섬 문화의 변화

전남 해안가, 해양성 기후 맞춰 상록활엽수림 차지 해발 고도 따라 상록침엽수와 혼재 흑산 가거도 깊은 숲속 숯가마 흔적 붉가시·종가시나무 숯 재료 사용 30년 이후 닥칠 아열대기후 ‘주목’

2022-04-10     김우관 기자

 

신안군 흑산면 대흑산도와 홍도는 상록활엽수림이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해발고도와 사면에 따라 소나무 군락만 형성된 곳도 있다. 사진은 홍도 깃대봉 전경.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 국가이기 때문에 대륙과 해양의 접촉면이 많은 기후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한겨울에도 시베리아 북서풍의 영향을 받는 경인지역, 강원도 지역과는 달리 남쪽지역은 해양성 기후로 인하여 온도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기후의 특성은 지역마다 고유한 생태계와 식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Burrows에 의하면, 식생(vegetation)이란 ‘지표상에 나타나는 모든 식물의 집합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식생은 기후와 토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지구상에는 매우 다양한 식생이 존재한다. 따라서, 식생의 유형과 분포 특성을 관찰하면,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의 특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산야의 나무들인‘숲’을 포함하여 하천의 식물, 초원의 식물, 해안사구의 식물 등 모든 것이 식생에 포함된다. 식생은 태양 에너지를 바이오매스(biomass)로 변환하고 자연생태계의 모든 먹이 사슬(food chain)의 기반을 생성한다. 식생은 지표면과 대기 경계층 내부의 에너지 균형에 영향을 미치며 종종 극단적인 지역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때문에 기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식생은 야생 동물에게 서식처와 먹이를 제공하며 인간에게는 직접(예: 목재) 및 간접(예: 유역 보호)적으로 사회-경제-환경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산림 생태계의 울창한 식생은 강수의 유속을 늦춤으로써 토양의 침식을 안정시켜 산사태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식생은 사람들에게 영적(靈的), 문화적, 심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호주 시드니공과대학(University of Technology) 연구진들이 실내 식물이 거주자의 기분 상태와 웰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계를 조사하였다. 연구 결과, 식물은 사람들의 긴장과 불안 37%, 우울증 58%, 분노와 적개심을 44% 줄이는 것을 발견했다.

식생은 우리에게 음식, 섬유소, 피난처, 약, 연료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이러한 자연자원은 녹색 식물(green plants)의 대사과정을 통하여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산소가 방출되고, 사람들은 이 산소를 마시며 생활한다. 식물의 뿌리가 성장하면서 바위나 도로에 기계적 및 화학적 풍화작용을 일으킨다. 식물 뿌리가 성장하며 기계적 풍화작용을 일으키면서 암석이 갈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식생은 물의 이동을 늦추고 토양 침식을 줄여 수로로 유입되는 오염 물질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식생은 우리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섬 지역 해안가와 육지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전라남도의 완도, 고흥, 여수를 비롯하여 경남 남해의 식생은 대체로 따뜻한 해양성 기후에 맞는 상록활엽수림이 대부분이다.

해안가 지역에는 방풍림을 위해 인공적으로 나무를 심은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산지는 구실잣밤나무와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동백나무와 같은 교목성(喬木性) 수목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고 우묵사스레피나 돈나무 같은 관목성(灌木性) 식물이 교목층과 혼재하면서 상록활엽수림을 형성하는 자연식생이다.

또한, 상록활엽수는 해발고도와 사면(斜面)에 따라 소나무나 곰솔 같은 상록침엽수와 혼재하는 예도 있다. 흑산면 대흑산도와 홍도의 식생은 상록활엽수림이 우점하고 있지만, 해발고도와 사면에 따라서 소나무군락만 형성된 곳도 있다. 흑산면을 제외하고 대부분 신안군의 섬 식생은 리기다소나무, 곰솔 등을 심은 2차림(二次林)이다. 식재를 한 지 30~40년 정도 된 조림지도 어느덧 자연천이(自然遷移) 과정에 의하여 다양한 하층 식물들이 섞여 나기 시작하였다.

흑산 가거도 조사 당시에 깊은 산속에서 여러 개의 숯가마 흔적을 발견했다. 사진은 웅덩이를 파고 돌을 쌓은 흔적이 있는 숯터 전경.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를 조사할 때 깊은 숲속에서 여러 개의 숯가마를 찾았던 적이 있다. 웅덩이를 파고 돌을 쌓은 흔적인데, 주민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이 섬에서 숯을 만들어 팔았다는 것이다. 숯 만드는 재료 나무로 좋은 것은 활엽수, 그중에서도 참나무류이다. 비교적 온대낙엽수림대가 형성되어 있는 강원도나 충청북도, 경기도 북부 등 중부지방에서는 신갈나무나 떡갈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숯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기후대가 다른 신안군 가거도도 같았을까.

일본에서도 신탄림(薪炭林)이라고 하여 숯을 만들어 내는 숲이 있었는데, 주로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산벚나무, 팽나무 등 낙엽활엽수, 그리고 규슈지역과 주변 섬 지역에서는 상록활엽수인 가시나무 종류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반도 난온대 지역인 가거도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 상록활엽수인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등 가시나무류가 숯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2021년에 발표된 IPCC의 평가보고서(AR6)에 의하면, 지구 평균기온이 1.5℃ 상승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져서 그 정점을 오는 2040년으로 보고 있다.

기후생태학자 Beck 등이 쾨펜-가이거 모델에 의하여 분석한 한반도 기후지도를 보면, 현재 서남해, 남해 섬 지역 일부에 나타나는 난온대 기후 전선이 21세기 중반에는 중부지역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한반도 식생을 이 모델에 적용하여 본다면, 현재 남부지방에 우점하고 있는 상록활엽수 종류가 중부지방 저지대까지 북상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현재 남부 섬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상록활엽수와 소나무 등 침엽수와의 혼재림은 사라지고 상록성 활엽수림만 남을 것으로 본다. 특히 아열대성 식물까지 유입되어 지금의 남도 식생과는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기후변화에 의한 대흑산도 식생의 추이를 조사한 조와 김(2018)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우점군락인 상록성활엽수와 소나무, 혹은 곰솔이 섞여 있는 혼성림은 향후 10~20년간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붉가시나무의 분포가 증가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구실잣밤나무군락과 후박나무군락 분포 지역이 확대할 것으로 예측했다(국립공원연구지 제9권 제3호).

식생은 크게 자연적 요인, 인공적 요인 두 가지 큰 흐름에 의하여 특성이 변한다. 도시 근교와는 다르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섬 식생은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식생의 구조가 바뀌면 그 속에서 살던 새나 포유류, 곤충 등 생물상이 함께 변하게 된다.

숲이 주는 다양한 자원에 의지하면 살아온 우리 생활과 문화도 달라진다. 30~40년 뒤 아열대기후로 변한 남도 섬 지역의 주민들 생활은 과연 어떨까. 바다 생태계와 어장 환경에 비교하면 기후변화의 속도감을 못 느낄 정도로 산림 생태계는 천천히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친근하고 익숙하게 맞이했던 마을 소나무가 그 자취를 감추는 날도 멀지 않았다.

글·사진/홍선기(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