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학교를 찾아서](1)영광초등학교-전남 최초의 근대학교...오랜 풍파딛고 126년 역사 자랑

우리나라 근·현대사 애환 함께 간직 일제 의해 10여년 역사 증발되기도 2001년 개교 100주년 기념관 개관 교과서 변천 등 희귀 교육자료 보관 정치·경제·학계 선각자 다수 배출 시조시인 조운 공부 민족의식 고취 영광향교 등 연계 문화자산화 복안

2022-06-09     김명식 기자
1896년 11월 6일 영광공립소학교로 개교한 전남 영광초등학교는 올해 개교 126년을 맞은 전남지역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이다. 학교 운동장 한 켠에 웅장하게 서 있는 수백년 수령의 팽나무가 영광초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영광/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조선말기인 1895년 2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은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한다. ‘인재 양성이 국가 중흥의 길’임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근대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서 반포했다. 조서에 따라 같은 해 7월에는 근대학교 교육제도가 법제화되고, 소학교령이 발표된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영광초등학교 최초 전신인 영광소학교 설립과 초대 교원(교장) 이종각 임명을 알리는 관보./영광초 개교 100주년 기념관 소장
영광초등학교가 개교 후 학생들이 공부하던 영광향교 명륜당 옛 모습./영광초 개교 100주년 기념관 소장
영광초등학교의 ‘전남 최초 학교 기네스 인증패’./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교육입국’ 안고 1896년 11월 6일 개교

소학교령이 발표된 이듬해인 1896년 9월 전국 13개 도 가운데 1등 군에 소학교 38개교가 설립된다. 광주에는 전남도관찰부공립소학교(현 광주서석초등학교)가 설립되고, 영광에는 영광공립소학교가 세워진다. 당시 영광군은 광주, 순천과 함께 전남지역 1등 군에 속했다.

같은 해 11월 6일 고종의 칙령으로 판임관 6등급 이종각이 영광소학교 교원(교장)으로 임명된다. 앞선 1895년 고종은 초등교육기관인 소학교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교원 양성을 위한 사범학교인 한성사범학교를 만든 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이종각이 영광공립소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전남 최초의 근대공립학교가 문을 열었다. 올해 개교 126년째를 맞은 영광초등학교는 이렇게 백년지대계교육의 첫 발을 내딛는다.

영광초가 전남 최초의 근대적 학교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목포와 여수, 나주 보다도 더 빨리 학교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영광군 내부에서도 ‘전남 최초의 근대학교는 영광초’란 사실을 모르는 주민들이 많다.

과거 영광의 세와 역할을 들여다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고려 현종 9년 4도호·8목으로 지방개편에 따라 영광은 나주목의 5개 속군에 편제됐으나 나주목과는 독립적인 행정단위를 이룬다. 당시 영광은 압해·장성의 2개 속군과 삼계·육창·해제·임치·장사·무송· 함풍· 모평의 8개 속현을 거느린 중요 행정거점지로서의 큰 면적을 보유했다.

여기에 영광은 고려시대부터 남서해안지역 공물이 모이는 조창(租倉)이 설치될 만큼 군세가 가장 컸다. 조창은 고려·조선 시대에 조세로 거둔 현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중앙에 수송하기 위해 수로연변에 설치한 창고 및 이 일을 담당하던 기관으로 세곡의 수납·보관·운송 기능을 했다.

◆물산 풍부 교통 중심지로 조창 위치

영광초가 최초 자리잡은 곳은 현재 영광향교 명륜당 자리다. 학교가 설립되고, 교사가 임명됐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공간이 없어 명륜당을 이용했다. 이곳은 영광군 3·1운동 발원지이기도 하다. 영광초는 1912년 현재의 부지로 이전, 이 자리에서만 10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영광초는 1910년 6월 16일 일제 통감부가 보통학교령을 공포하면서 보통학교로 바뀌게 된다. 이후 1947년 11월 1일 영광북공립국민학교, 1950년 5월 1일 영광국민학교, 1996년 3월 1일 영광초등학교로 개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2004년 9월 1일 묘량초등학교과 통폐합했다.

그런데 학교 이름과 교육체계가 여러차례 바뀌는 과정에서 10년의 학교 역사가 증발했다. 일제가 보통학교로 바꾸면서 소학교 역사 10여년을 삭제했다는 교육사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이 사라진 역사는 훗날 영광초 동문들이 개교 100주년 기념탑건립 추진 과정에서 발견해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1920년대 영광초등학교 학생들의 체육수업 모습./영광초 개교 100주년 기념관 소장
영광초등학교 기악부의 영광시가지 행진 모습(1963년)./영광초 개교 100주년 기념관 소장
영광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관 입구. 본관 건물 뒷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남도교육청 지원으로 2001년 개관했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개교 100주년 기념관 개관

영광초 역사는 학교 본관 뒷편에 건립된 ‘개교 100주년 역사관’(백년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남도교육청 지원을 받아 2001년 개관한 백년관에선 우리의 근현대 초등교육 변천사와 각종 교육 자료를 만날 수 있다. 동문과 지역민들로부터 기증받은 졸업·운동회·학예회·신사참배·학생이 동원된 도로공사·농사돕기·마을청소 사진 등 기록물은 소중한 교육자산이자 문화유산이다. 기념관에는100년의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향한 학생들의 꿈과 희망도 간직하고 있다.

126년의 역사를 지닌 학교답게 영광초는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영광초총동문회가 매년 5월 개최하는 ‘동문 한마당 축제’는 영광지역 최대 축제로 자리매김해 전국 방송을 타기도 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인재들도 배출했다. 졸업생은 2021년까지 총 1만9천942명이다. 이 가운데 정치·경제·행정·사법·학계·문화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인물들도 다수다. 합참의장을 역임한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 조기상 전 국회의원, 다산연구원을 설립하고 국립광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이을호 전 전남대 철학과 교수, 김준형 행남자기 창업주,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장을 역임한 신언용 변호사, 문학을 통해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에 앞장선 시조시인 조운과 조의현, 전남대·동국대상명여대·성신여대 교수를 역임한 철학자 정종, 국기원 부원장과 태권도세계연맹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태권도 발전의 산 증인으로 체육계 거목인 조영기 전 전남도의원 등이 영광초에서 공부했다.

◆민족시인 조운 등 수많은 인재 배출

이처럼 우리 근현대사와 궤를 함께 해 온 학교지만 영광초 역시 학령인구 감소라는 사회 변화를 극복해야 할 상황이다. 1970년대 초중반 1~6학년 37개 학급에 2천100여명이 다니던 학교는 2022학년도 기준 35개 학급(특수학급 2)에 782명이 재학중이다. 학급수는 50년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학생수는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더구나 묘량초와 영광서초등학교를 통합 한 것을 감안하면 학령인구 감소 여파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영광초는 새로운 백년대계를 준비중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 포스트코로나 시대 디지털 교육환경을 구축해 미래를 선도하는 인재양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내년에 총 124억원을 들여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구축하는 게 대표적이다. 스마트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공간혁신, 그린학교, 스마트교실, 학교시설 복합화를 통해 교수학습 혁신과 미래형 교육과정 구현이 가능한 미래 교육 인프라를 갖춘 학교로 탈바꿈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영광초는 첨단 교수학습 방식을 도입한 미래학교로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 영광초는 지역사회 구심점으로 역할을 해 온 만큼 영광초동창회, 영광군 등과 협력해 영광초의 역사와 전통, 각종 교육자료를 문화자산화해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복안도 갖고 있다. 학교와 인근의 영광향교 등을 연계하는 교육자산을 연계한 탐방길 조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성모 현 영광초등학교총동회장과 1996년 설립된 개교 100주년 기념비./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새로운 교육백년지대계 추진

한성모 영광초총동창회장은 “영광초는 예나 지금이나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고, 126년의 역사만큼이나 유무형의 교육문화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지역민과 애환을 함께 해온 역사를 기리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영광초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운동장 한쪽에 서 있는 웅장한 팽나무 한그루다. 영광초 동문들에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1912년 학교 이전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는 말이 전해진다.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광초가 최초 자리한 영광향교에 수백년 된 은행나무가 있듯이, 이 팽나무도 그 정도의 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나무 둘레가 어른 두 명이 양 팔을 벌려야 품안에 들어오는 데다, 20m가 넘는 나뭇가지 너비에서 학교의 유구한 역사를 한눈에 알게 한다.

오랜 풍파를 딛고도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은 그 뿌리가 얼마나 튼튼한 지 보여준다. 이는 根大枝遠(근대지원). 영광초 교장실 벽면에 게시된 액자로 ‘뿌리가 크면 가지가 멀리 뻗는다’는 글과 맞닿아 있다. 기초 기본 교육에 충실해야 함을 강조한 한자성어다.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에 처해있던 조선 말 고종이 반포한 ‘인재 양성이 국가 중흥의 길’을 향한 교육입국조서는 그대로 살아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영광/김관용 기자 kky@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