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 난민 보고서]프롤로그-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광주의 ‘인류애’

민간차원 고려인귀환모금운동 전개중 난민 480여명에 항공료 지원 광주 안착 법적지위·주거·취업·교육·의료 등 ‘조상의 땅’ 자활엔 넘어야 할 산 많아 “사회적 자본 걸맞는 정책·제도 필요”

2022-07-14     김명식 기자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따 양, 한국 입국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따 양이 지난 3월 22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을 통해 입국해 할머니인 남루이자 씨와 포옹을 하고 있다. 남아니따 양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뒤 현지에서 어머니와 고려인의 보호를 받으며 부다페스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광주 고려인마을의 지원을 받아 한국행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으로 입국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가 5개월 넘도록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가족과 이웃을 잃은 강렬한 슬픔과 분노가 소용돌이친다. 도시는 불타고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면서 피난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유엔의 최근 보고서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이 66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모두 어디로 흩어 졌을까. 주로 폴란드나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서쪽의 이웃 국가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들도 ‘조상의 땅’인 대한민국을 찾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한국에 입국한 우크라이나인은 1천6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 고려인은 800여 명으로 추정된다.. 다시 이 가운데 400여 명의 고려인이 광주에 안착했다. 현재도 광주로 오고 있다. 그들은 왜 광주로 향할까. 그리고 미래는 어떨까. 남도일보는 ‘우크라이나 난민 보고서’ 기획을 통해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의 입국 현황과 광주(한국) 사회 적응 과정, 난민 정착 과제, 원주민과 이주민의 공동체 조성 노력, 대한민국의 재외동포 지위 향상 방안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광주고려인마을이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동포들에게 긴급구호품을 배분하는 모습./고려인마을 제공

우크라이나 고려인 김악사나(49)씨. 그녀는 최근 박 줄리아(29)·샤샤(15)·릴리아(12) 등 세 딸과 함께 광주에 도착했다. 그들이 거주하던 우크라이나 크레멘추크는 언제 돌아갈 지 알 수 없는 땅이 됐다. 인구 21만7천여명의 우크라이나 중부 산업도시 크레멘추크는 러시아의 공격을 잇따라 받으면서 폐허로 변했다. 지난달 27일에는 미사일이 대형 쇼핑몰에 떨어지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악사나씨가 세 딸과 함께 크레멘추크를 떠난 건 쇼핑몰 공격이 있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갈수록 거세지는 러시아 공격에 신분증과 간단한 옷가지만을 챙긴채 무작정 폴란드행 기차에 몸을 실은 게 지난달 20일이었다. 폴란드에서 기약없는 날을 보내던 가족에게 광주고려인마을이 보내준 한국행 항공권은 희망의 빛이었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은 터키를 거쳐 지난 9일 ‘할아버지가 태어난’ 대한민국 땅을 무사히 밟을 수 있었다.

악사나씨 가족처럼 러시아 침공을 피해 광주에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14일 현재 480여 명이나 된다. 지난 3월 고려인 4세 최마르크 군(13)이 광주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숫자다.

전쟁발발로 목숨부지도 장담할 수 없었던 고려인들에게 희망의 손을 내민 곳은 대한민국이었고, 광주였으며, 고려인마을이었고, 광주시민들이었다. 피난길에 오른 현지 고려인들은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살고 있는 고려인마을에 SOS를 보냈다. 고려인마을과 월곡동 주민들, 나아가 광주시민들과 따뜻한 국민들이 나서 성금을 보탰다. 고려인귀환운동모금운동이다. 지금까지 7억5천여만원이 모아졌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난달 30일과 1일 고려인동포 30여명이 광주고려인마을의 지원을 받아 조상의 땅으로 귀환한 모습./고려인마을 제공

 

그 돈으로 고려인들은 항공권을 마련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최마르크 군의 첫 입국 이후 하루 평균 4~5명꼴로 광주로 온다. 악사나씨가 광주에 도착한 지난 9일에도 네가족 12명이 함께 왔다.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순수 민간차원의 힘으로 전쟁 난민들을 조상의 땅으로 귀환을 돕는 건 세계적으로도 광주가 유일하다는 게 광주고려인마을 측 설명이다. 해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살리고자 너도 나도 온정의 탑을 쌓아올린 결과다. 작게는 고려인마을 주민들과 일찍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 나아가 광주시민들의 공동체 정신과 인류애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인들에게 광주와 한국은 ‘조상의 땅’이자, 처음 밟는 ‘낯선 땅’이다.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도, 광주시민도 아니다. 외국인이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취업과 아이들 교육도 문제다. 러시아 침공도 언제 끝날 지 기약없다.

 

 

광주고려인마을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 고려인 모습. 전라도 광주 고려인마을 글씨와 태극기, 우크라이나기 그림이 인상적이다./고려인마을 제공

 

그럼에도 고려인들은 조상의 땅에서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성금 지원으로 마련한 한 칸 방에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어른들은 공장이나 농촌의 일자리를 찾아나선다. 악사나씨도 외국인등록증이 나오는 대로 취업할 계획이다. 얼마전까지해도 먼 이국땅에서 살던 고려인들이 이제는 광주와 대한민국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가 됐다.

재외동포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민간차원을 넘어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고려인을 비롯한 다른 국적의 동포들의 적응과 정착을 위해 공적인 기구에서 종합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 역량만으론 지속성과 안정성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해외거주 동포의 국내 귀환과 관련된 법과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임영언 (사)재외한인학회장은 “우크라이나 거주 고려인들이 전쟁을 피해 대한민국과 광주로 대거 오고 있는 건 시민사회에 그들을 받아들일만한 사회적 자본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전개된 고려인귀환모금운동이 대표적인 예다”면서도 “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에 비해 국내거주 재외동포 정책이나 법과 제도들은 1990년 재외동포법 제정 이후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했다. 지금의 고려인 귀환 행렬은 재외동포법 개정, 재외동포청 신설 등 국내외 거주 재외동포의 지위 향상을 위한 정책·제도 개선 중요성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고려인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항일 독립운동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농업이민 등 다양한 이유로 러시아(구소련)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우리 동포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됐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